어린이날 저녁, 야근 중인 저만 빼고 식구들 모두 여행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작은아이가 유난히 아빠를 안쓰럽게 여겼던 모양입니다. 휴대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오늘은 평생 한번 오는 슈퍼문 데이래, 아빠는 무슨 소원 빌었어?”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얼렁뚱땅 둘러댔습니다. “응, 우리 딸에게 멋진 남자친구 생겼으면 좋겠다고 빌었지, 근데 너는?” 돌아온 대답에 깜짝 놀라고 말았네요. “다시는 친구들이 집을 나가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어.”
전날 밤이었습니다. ‘2012 군포 철쭉대축제’ 개막식을 치르느라 밤늦도록 귀가하지 못하던 차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뜸 작은 애와 함께 경찰서에 다녀왔다는 겁니다. 놀랄 수밖에요. 황급히 이유를 물었더니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그날 저녁, 작은애의 친구 세 명이 가출을 했는데 다행이 우리아이가 경찰서에 가서 친구들의 메신저 아이피를 알려준 덕분에 아이들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천만다행이지요. 초등학생들이 집밖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니까요.
가출은 충격이었고, 바로 찾은 건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거기까지였다면 잠시 가슴을 쓸어내리고 말일이었을 텐데 이어지는 얘기가 감동까지 선사했습니다. 경찰관이 작은아이에게 물었답니다. 혹시 함께 나가자는 제의는 없었느냐고. 작은 아이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학교폭력 걱정하기 전에…
“나는 우리 엄마를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데 내가 집 나가면 엄마가 걱정할 거 아냐. 그래서 난 그냥 집에 들어갈래.”
다음날 문자로 친구들이 다시 가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던 딸아이. 새삼 아이가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딸아이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름 생각해 보니까, 친구들의 가출을 이해할 만하다는 겁니다.
가출을 주도한 아이의 부모는 거의 매일 부부싸움을 했고, 싸움이 끝나면 어김없이 딸아이에게 앙갚음을 하곤 했답니다. 한 달 전 아빠는 집을 나갔고, 그 뒤 엄마는 술 담배에 의존하면서 지속적으로 아이를 괴롭혔답니다. 친구의 안타까운 상황을 얘기하는 딸아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습니다. 자기가 그 친구였더라도 집을 나가고 싶었을 거라면서.
어른들의 폭력성을 돌아봐야
친구의 불행을 담담하게 얘기하는 딸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저는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내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상시적으로 폭력에 노출돼 있는 아이를 도와줄 아무런 방법을 갖지 어른, 그게 많이 답답했고 안타까웠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말은 어쩌면 지금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처한 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리 없이 그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우선 아이의 말을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어요.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입니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어른의 폭력에 속무무책 당하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저 나름 방어권을 행사하고 싶은데, 물리력으로 안 되니 도피로서의 가출을 감행하게 되는 거죠.
학교폭력이 심각하다고 걱정들을 많이 합니다. 모두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운운합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는 인색합니다.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인정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폭력이 있기 전에 어른들의 폭력이 있었다는 것을. 부모의 폭력, 교사의 폭력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폭력의 대물림이라고 할까요.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걱정하기 전에 먼저 우리 어른들의 폭력성을 성찰해야 합니다. 초등학생 딸아이에게서 배운 겁니다.
최준영 작가·거리의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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