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中企-대기업 정책, 동화적 프레임 벗어나자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고 일자리의 88%를 공급한다. 숫자로는 1%, 일자리의 12%를 공급할 뿐인 대기업이 나라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을 홀대하고 핍박한다. 그러니 대기업을 규제해야 한다.’

대기업 규제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이 논리가 과연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을까. 약간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자. 4월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공약으로 내걸었었듯이 30대 재벌그룹을 해체해서 3천 개의 중소기업으로 만들었다고 해보자. 그리하여 대한민국에는 대기업이 사라지고 중소기업만 남게 되었다고 해보자. 과연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낙원이 될까. 중소기업들끼리 사이좋게 오순도순 힘을 합쳐 대한민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좋은 직장과 높은 소득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대기업을 없애고 나면 중소기업은 일자리의 88%가 아니라 100%를 공급할 것이다. 하지만 좋은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자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 100%라는 것은 좋은 직장이 없어짐을 뜻한다. 입으로는 욕을 해도 누구나 취직하고 싶어하는 곳이 대기업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대기업이 일자리의 12%가 아니라 30%, 40%로 늘어나는 것이 좋다. 대기업이 없어지면 그런 일자리가 12%에서 0%로 줄어드는 것이다. 대기업을 모두 없앤다고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좋아질 리도 없다.

中企는 선하고 대기업은 나쁘다?

대기업이 사라진 세상은 중소기업 자신에게도 좋지만은 않다. 이름이 같은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같은 편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011년 7월 상공회의소가 500개의 납품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납품 상대방 기업과의 거래에 대해서 만족하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만족도는 82.4%, 중소기업에 납품하는 협력사의 만족도는 57.2%였다. 중소기업도 속마음으로는 다른 중소기업보다 대기업과의 거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없어진다는 것은 납품 중소기업들이 좋은 거래처를 잃게 됨을 뜻한다.

동네 슈퍼들의 경우 대형마트가 모두 문을 닫는다면 지금보다 사정이 조금 나아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네 가게들끼리의 경쟁까지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온라인 쇼핑은 어떻게 할 것이고, 외국의 프랜차이즈 유통업체가 들어오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대형마트로 인해 안정된 판매망을 확보하게 되었던 계약재배 농민들과 무명의 중소 제조업체들, 푸드 코트의 식당 주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릴 때는 누구나 세상을 단순한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좋은 나라 대 나쁜 나라, 또는 착한 사람 대 악한 사람, 이런 식이다. 동화들은 대부분 그런 프레임 위에 서 있다. 나이가 들어 공부하고 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세상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대기업 규제, 경제학 관점에서 봐야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관계도 단순하지 않다.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기업들은 서로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한다. 중소기업은 선하고 대기업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문제를 좋은 나라 대 나쁜 나라 식의 동화적인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동화는 환상에 머물러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읽는 아이들의 마음만 따뜻하게 해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동화처럼 이해하고 나면 결과는 치명적이다. 그 동화가 현실 속으로 튀어나와 스스로 삶의 기반을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생긴 이유는 대중들이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안타깝게도 요즈음 경제에 대한 논의에서는 경제학은 무시되고, 온통 동화 작가들만 활개를 치는 듯하다. 사람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를 경제학 프레임으로 바라봐 주길 기대해본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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