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총선 선거운동 개시일인 29일 아침 출근길 동네 아파트단지에서 어깨띠를 두른 서너명의 선거 운동원을 만났다. 드문드문 후보자의 이름을 외쳐대지만 눈길 주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힐끗 마주친 눈길에 겸연쩍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지하철역 인근에서는 후보자가 한 무리의 운동원들과 함께 얼굴이 인쇄된 명함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그런데, 후보자가 지켜선 길보다는 다른 쪽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제 더 이상은 속지 않겠다는 냉담인지, 행인들은 그들이 누군지 알고 싶지 않은 듯 했다.
한 유권자가 내뱉는 말 속에 현실이 그대로 배어난다. “재미도 없는 선거인데 누가 투표하겠어. 맨날 쌈박질만하면서….”
요즘 선거가 국민의 신성한 권리라기보다는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할 상황에 놓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선거 과잉과 피로증 때문에 선거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아무나 뽑아 놔도 새로울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다는 자포자기성 불신이 팽배하다.
지구가 둥근 것은 신이 축구팬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 분위기 속에 ‘투표는 국민 주권의 출발이고 끝이다’는 교과서적 훈시가 비집고 갈 틈은 별로 없다. 일상의 주변에선 선거판이 벌어지고 있지만 열기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선거판은 사실 별로 재미가 없다. 월드컵처럼 긴장감도 없고, 더구나 감동을 주지 못한다. 환희는 더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선거 판세의 고착화도 한 원인일테고 ‘정치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배신감도 한몫 했을 터이다.
그렇다고 선거판을 심판도 없고 응원도 없는 축구경기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다수의 유권자들이 외면할 때 선거는 정치하는 ‘그들만의 잔치’로 변질된다. 나랏일과 지역 현안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현실에서 모든 것을 종합, 유기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 행동하는 것, 적어도 그렇게 노력하고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주인에 걸맞은 태도일 것이다.
특히 국회의원이 4년 동안 일을 한다는 측면에서 투표는 단순히 나의 문제, 내 시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흥망을 볼 때 아들·딸, 손자·손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사람됨과 공약을 꼼꼼히 따지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모든 이슈의 이면에는 국가 예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나의 세금’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무관심했다면 이제라도 후보자공약 정도는 한번 펼쳐봐야 한다. 유권자들도 예전 히딩크 감독처럼 지연 학연을 떠나 박지성도 찾아내고 이을용도 발굴해 낼 수 있다.
뻔한 선거결과 예상을 뒤집는 것은 유권자의 특권이다. 지지가 힘들다면 ‘분노의 1표’라도 좋다. 그렇게 될 때 이변은 연출되고 저녁시간의 개표방송은 또 다른 볼거리가 된다.
월드컵에서처럼 놀람과 감탄도 나올 수 있다. ‘나 하나쯤’하는 생각에 투표날 놀면 다음 선거까지 민의가 왜곡된 국민의 대표를 보고 살아야 한다.
정신건강에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4년간 짜증낼 일을 생각하면 넉넉잡아 1시간의 투표시간은 매우 효율적이다.
어쨌든 투표는 하고봐야 한다. 선거가 아무리 신물 나고 몇몇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에 놀아나는 듯한 느낌이 싫더라도 유권자의 의무와 권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 부모가 아무리 못났더라도 결국은 모시고 섬겨야 하는 이치와 같다.
민주주의라는 큰 배를 그냥 침몰시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덧붙여 이번 선거의 유권자 1인당 평균비용은 2만1천450원이다. 인천 유권자 220만3천90명 중 50%가 투표를 안한다고 가정하면 236억원이 넘는 세금이 날아간다.
지난 18대 총선 당시 인천 투표율은 42.2%에 그쳐 전국에서 꼴찌였다.
손일광 인천본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