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공연장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초연 대작을 미끼로 서울 관객 유치에 목을 메며 ‘서울 해바라기’라는 비난의 화살을 받았던 이들이 변하고 있다.
‘지역밀착형 공연장’을 표방하고 나선 것. 작지만 알찬 프로그램은 지역민들에게 문화예술의 향기를 불어넣고 있다. 새로운 문화코드의 등장이며, 그 중심에는 지난해 도내 주요 공연장에 대거 입성한 3세대 문화 CEO들이 있다.
이들 모두 탄탄한 실전 경험과 높은 애향심이 바탕에 깔려 있다. 문턱을 낮추는 것이 아닌 아애 문턱을 없애겠다고 말하는 CEO들. 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新문화허브’ 스토리를 들어본다.
글 싣는 순서
①성남문화재단 안인기 대표이사
②삼호아트센터 이윤희 이사장
③안산문화예술의전당 김인숙 관장
④의정부예술의전당 최진용 관장
⑤고양문화재단 안태경 대표이사
안인기 성남문화재단 대표(65). 그는 안성기의 형이다. 30여년 방송가를 누빈 예능 PD 출신이기도 하다. 그의 손을 거친 히트 프로그램도 숱하 다. 코미디언 송해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전국노래자랑’이나 원조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관’ 등의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경력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안성기의 형’이란 사실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뿐. 그런데 지난해 11월 그가 국내 빅3라 할만한 성남아트센터의 사령탑에 앉았다. 이후 그의 행보가 거침없다.
‘천원 클래식’에 ‘만원 연극’, ‘게릴라 콘서트’까지 성남시민들의 안방까지 찾아가는 문화공연들이 줄을 잇고 있다. “큰 방향은 재미가 넘치는 공연장”이라는 안인기 대표를 지난 27일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났다.
■
“공연을 무대에 올려놓고 시민들이 찾아주길 기다리지만은 않을 겁니다. 문화를 가지고 직접 찾아가야죠. 문화예술이 모세혈관처럼 지역 곳곳에 흘러들어 가게 할 겁니다.”
지난 6년간 성남아트센터를 이끌었던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이 클래식 코드였다면 안 대표는 대중문화 코드다.
‘이런저런 프로그램이 있으니 찾아오시라’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들고 관객을 찾아가는 것. 그래서 안 대표가 취임하자 마자 벌인 사업 1호가 바로 ‘게릴라콘서트’다. 광장과 시장, 탄천 둔치를 찾아 게릴라콘서트를 열었다. 길거리 마술도 하고 설치예술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안 대표는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뜻하지 않게 만나는 공연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며 “문화예술이 전문 공연장에서나 감상할 수 있는 먼 얘기가 아니라 그저 우리의 소소한 일상속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 아무리 좋은 공연도 관객이 보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예술인들의 재능을 모아 무료 공연을 선 보이는 재능나눔 이벤트 ‘나눔 모락 기쁨 모락’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반응이 뜨거웠던 ‘연극-만원 시리즈’도 확대됐다. 이 프로그램은 대학로의 인기 작품을 전석 1만원에 볼 수 있다. 올해는 ‘아빠는 월남스키부대’, ‘리턴 투 햄릿’ 등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개관 초기에 비해 초연 대작들이 많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물론 화제작도 중요하겠지만 무조건적인 대형 공연물에만 치중하진 않을 겁니다. 대중친화적인 공연도 다양하게 기획할 생각입니다.”
■
“이곳에 와서 보니, 중앙공원에 해외 유명 야외공연장과 비견될만큼 훌륭한 야외공연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름만 공연장이지 1년 내내 거의 활용이 안되공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이곳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겠다고요.”
‘파크 콘서트’, 안 대표는 중앙공원 야외공연장을 LA의 헐리우드볼, 시카고의 라비니아 페스티벌, 보스턴의 탱글우드 페스티벌, 베를린 교외의 발트뷔네 콘서트처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올해 그의 최대 역점사업이기도 하다.
파크 콘서트는 녹음이 우거진 5월에 시작해 9월까지 이어진다. 프로그램은 샌드 애니메이션, 영화 및 공연영상 상영, 클래식, 재즈 및 영화음악 콘서트 등을 구상하고 있다.
“시민들이 편히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곳에 가면 즐겁고 재미난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게 목표죠. 올해 처음 시작하는 ‘파크 콘서트’는 그래서 의미가 더 있습니다. 시민들은 돗자리를 들고와 누워 쉬면서 공연을 만끽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고민도 있다. ‘공원에서 하는 공연은 돈을 받으면 안 된다’는 성남시 조례 때문에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은 것.
안 대표는 “아무리 좋은 공연장이더라도 공연의 질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찾지 않는다”며 “파크 콘서트를 성남의 신공연문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지자체에도 없는 이 조항을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성남시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웃고 즐길 수 없는 대표축제가 없다는 것도 안 대표가 해결해야할 과제 중 하나다.
“과거 탄천페스티벌 총감독을 맡아 달라고 해서 와보니, 이미 프로그램 구성과 출연진 섭외, 예산 배정까지 모두 끝난 뒤였습니다. 사람 동원해 억지로 시간 때우고 돈 버리는 행사 일색이었죠. 그렇게는 만들지 않을 겁니다.”
안 대표는 30여년간의 방송 예능 PD 경험을 살려 코미디 페스티벌인 ‘희극제’를 생각하고 있다. 출연진은 전부 희극인들이다.
안 대표는 “성남을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기 위해서는 원주민, 이주민, 입주민이 어우러질 수 있는 축제가 돼야 한다”며 “모든 시민들이 실컷 웃고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