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250주년 행사 풍성
유배생활의 시련 속에서도 실학을 집대성하고 19세기 초 조선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던 다산 정약용이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역사책의 대표적 저술인 ‘동사강목’을 남긴 조선시대 최고의 역사가이자 가장 진보적인 실학자로 꼽히는 순암 안정복. 그 역시 올해가 태어난지 300년이 된다.
가히 2012년을 ‘실학의 해’라 할만하다. 정치·과학·예술 등 다방면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르네상스인이었으며, 뜨거운 애민정신과 비판정신으로 늘 역사와 백성을 생각했던 조선 후기 실학자들. 국내 유일의 실학을 주제로 한 역사박물관인 남양주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은 그들의 삶과 업적이 21세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며, 또 어떻게 보다 쉽게 보여줄 지를 고민하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실학박물관은 상반기(4~9월)에 걸쳐 다산 탄생 250주년 특별전을 야심차게 준비했다.
‘다산, 열수(烈水)가의 삶과 꿈’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사상가 혹은 철학가로서의 다산의 모습을 조명해 온 기존 전시들과는 차별점을 뒀다. 엄하고 자상한 아버지이면서 제자들로부터 무한한 존경을 받았던 스승의 모습까지 생활인으로서 다산 정약용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이 이전 전시의 핵심이다.
전시는 다산 소년기의 시 작품과 여유당에서의 생활 모습, 강진에서의 고향 생각, 자녀들과 주고받은 편지, 천진암에서의 회고 등을 통해 삶속에서 가족과 백성을 위해 고뇌했던 ‘인간’ 정약용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준다.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순암 안정복 탄생 300주년 특별전 ‘실학의 중심 광주, 순암 안정복’(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순암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하는 전시는 국내외 각 기관에 소장돼 있는 순암의 저술중 가장본, 필사본, 인쇄본, 간행본 및 간찰, 그림 등 7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다산의 해에 걸맞게 올 한해 실학박물관에서는 다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체험·참여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박물관은 다산 차(茶)를 개발해 ‘다산과 함께하는 다도체험’을 진행하며, 다산정원을 마련해 다산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이와 함께 다산의 고향인 마재 마을(남양주 능내리)을 중심으로 다산과 관련한 문화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마을 답사를 비롯해 ‘철마산산신제’와 ‘다산 회혼례’, ‘다산의 초학마당과 성년식’ 등의 복원 및 재현을 계획하고 있다.
여건상 박물관을 찾기 어려운 도민들을 박물관이 직접 찾아가는 ‘다산 경기 투어’(가칭)도 준비중이다. 도내 시·군 주민자치센터를 중심으로 문화소외 지역과 초·중·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해 다산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강연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박물관은 다산 정약용의 사상 연구에도 집중력을 기울인다.
우선 K·EU 국제심포지엄이 올 9월 개최될 예정이다. ‘다산 철학, 유럽철학과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심포지엄은 국내외 저명 연구자들이 참여해 다산의 철학과 사상을 유럽의 근대 철학자들과 비교·연구해 실학의 세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어 10월에는 ‘퇴계학과 다산학’을 주제로 한 학술회의를 열어 퇴계의 경학과 이익, 안정복, 정약용의 경학을 비교해 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또한 다산 정약용의 저술인 ‘아방강역고’가 국역 발행될 예정이다. 이 책은 다산의 역사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저술로 이번 국역 발간을 통해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다산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김시업 실학박물관장 인터뷰
“실학은 결코 고루하거나 고답적인 옛 학문이 아닙니다. 실학의 실사구시 정신과 과학적 실용정신은 21세기 신문명을 개척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사적 동력이 될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 어느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시업 실학박물관장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보다 쉽게 사람들에게 실학사상을 알릴 수 있을까’다.
수백년 전 번성했던 학문인데다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책이나 문서로 된 유물이 대부분이여서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문책과 문서에 의존하는 상설전시를 볼거리 중심으로 보다 쉽게 바꾸고, 박물관 앞터에 다산정원을 꾸며, 다산 차밭, 천체와 별자리 체험, 뽕밭과 명주 농사 등 다산이 권장한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또한 전시에 대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및 대표 유물에 대한 QR코드 안내시스템을 구축했으며, 각종 디지털 영상을 대폭 확대했다. 단순히 책만 구경하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고, 체험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실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미디어 모빌아트 기법으로 제작된 ‘움직이는 곤여만국전도’는 그 노력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김 관장은 올해 핵심 사업에 대해 “실학이 단순히 경기도 안에만 머물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실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전국에 있는 수많은 다산 관련 단체를 하나로 묶어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다산 탄생 250주년, 순암 탄생 300주년으로 한국 실학계로서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김 관장의 말대로 다산의 고향인 남양주 마재마을에 위치한 실학박물관에서 다산의 향기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해 본다.
윤철원기자 yc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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