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 만나고싶었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

도시 구석구석에 활기 불어넣기… 현장·혁신市政 눈코 뜰새 없다

 

그림을 잘 그려 수원에서 열리는 각종 미술 사생대회에 자주 참가하는 단골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수원8경 중 하나로 꼽히는 ‘화홍문’의 수문을 통해 흐르는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생기는 무지개를 보고 색을 입히고,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태내고 있는 ‘방화수류정’을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렸다.

 

그림을 그리고 나선 수원천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소년은 피카소가 되지 못했다.

 

250년 전부터 조상들이 살던 수원에서 태어나고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소년은 부모와 조부모를 일찍 여읜 탓에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집 앞에 있는 서울대 농대에 진학했다.

 

청년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었고 현실과 적절하게 타협해 안정된 직장에 취직, 착한 인재로 10년을 살았다. 그런 그가 30대 중반에 수원을 ‘바꾸겠다’고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어이없어’하는 동료들의 시선을 뒤로 한채 15년을 수원에서 시민운동가로서의 길을 말없이 걸었다. 인구 110만의 수장, 염태영 수원시장의 인생 전반전 스토리다.

 

수원천에서 물놀이 하던 꼬마가 수원시장이 됐으니 누가봐도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다. 2010년 7월 1일 취임한 민선5기 염태영 수원시장은 “탄력을 잃고 노쇠한 수원시를 대한민국 지방자치제의 롤모델로 만들겠다”는 뜻을 품고 달려오고 있다.

 

1월 10일 만난 염 시장의 머리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꽤 많은 흰머리가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참 많이 고단해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일상이 궁금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질문공세를 이어갔다.

참 젊은 시장 그리고 참 어려운 대장

“취임 당시 많은 분들이 시장이면 나이가 좀 들어보이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해 주셨는데, 요즘엔 염색하라고 합니다.

 

(하하) 행사장 갈 때나 주민들과 만날 땐 비비크림 정도는 바르고 나가는데 워낙 바쁘다 보니 외모관리할 시간조차 없네요. 어떻게 박피라도 좀 할까요?”

 

나름 수원바닥에서 동안을 자랑하던 염 시장은 수원시장으로 지낸 2년동안 스스로도 많이 늙었다고 했다.

 

차안에서 쪽잠 자고, 새벽 4시에 전자결재하면서 몸을 혹사시켰으니 ‘자업자득’ 이라고 볼 수도 있다.

 

수원에서 24시간 먹고, 자고, 일만 하는 염 시장 덕에 수원시는 요즘 ‘젊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시장은 늙고, 수원시는 젊어지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민운동가 출신인 염 시장은 취임 후 파격행보를 시작했다. 그는 도로 내고 건물 짓는 요란한 콘크리트 행정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트위터 등 다양한 뉴미디어 창구를 활용해 젊은층과 소통하고 때론 페이스북에서 수원 살림살이에 대한 시민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대학생, 주부, 다문화가족, 만두가게 사장, 회사원들과 자유롭게 만나 이야기 하고 시청 홈페이지 민원글에 직접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프로야구 10구단을 유치하겠다며 잠실야구장을 찾아 수원시를 홍보하고 얼마 전엔 7급 이하 공무원들과 일명 ‘염場토크’를 통해 직원들과 속시원한 대화의 장을 갖기도 했다.

 

시민활동가 출신답게 행정스타일이 여느 단체장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일까, 지난 2년 동안 망치소리 나지 않은 수원시를 조용해졌다고들 평가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젊은시장이 ‘버겁고’, ‘적응하기 힘든’ 존재였다고 토로한다.

“임기 절반이 지나는 동안 느낀 건 한마디로 ‘시장은 3D업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생활이 전혀 없고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수없는 일정을 소화해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시민들과 만나고 시장이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지에 대한 궁금증 등을 시장이 직접 알리고 있는데 피드백이 바로바로 와 힘들어도 일할 맛이 납니다. 하지만 집에선 낙제점입니다.(하하) 아내와 아들한테 미안하죠.”

‘풍운지회(風雲之會)’의 만남을 꿈꾸며

취임사를 통해 ‘시민을 섬기는 서민시장, 솔직하고 진솔한 시장, 생각까지 젊은 시장이 되겠다’고 밝혔던 염 시장은 정체되고 노쇠한 수원의 이미지를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직원들이 제안한 아이디어나 주민들의 소소한 의견까지 최대한 수렴해 시정에 반영하고 있다.

 

그 결과 평생학습센터·수원외국어마을·태장마루 도서관을 개관하는 등 품격 있는 인문학도시 조성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도 많은 진전을 가져왔다. 여기에 시민 참여형 도시재생사업 추진, 팔달구청사 건립 추진계획 확정 발표, 화성 르네상스사업과 마을 만들기 사업 추진, 수원천 복원사업 및 서호생태 수자원센터 준공 등을 통해 녹색도시의 기반도 조성했다.

 

아울러 30년간 지역현안이었던 수원비상활주로를 2013년까지 이전키로 합의한 것을 비롯해 수원·화성·오산시 행정구역 복원의 단초를 마련하기도 했다.

 

“재개발·재건축문제는 과거 개발시대가 남겨준 유산으로 전면 철거 후 실시하는 아파트 위주의 획일적인 개발은 지양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원주민 재정착률을 낮추고 공동체를 해체하는 등 사회, 경제, 물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일으키죠.”

 

염 시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맹목적인 개발이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시장은 수원을 ‘인문학 도시’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정조대왕과 번암 채제공, 그리고 다산 정약용과의 ‘풍운지회(風雲之會)’의 만남이 있었기에, 조선후기 실학발전과 문예부흥기를 이루어냈고, 그들의 만남이 성곽 건축의 백미인 수원 ‘화성’을 축성한 것입니다. 수원의 경제 발전과 제2의 문예부흥기라는 역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시민들의 체감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기 위해 미래세대에게 부담만잔뜩 지우는 못난 기성세대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염 시장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눈에 보이는 콘크리트 행정을 할 때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주민들이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시장은 ‘주민참여제’, ‘좋은마을 만들기’, ‘시민배심원제’, ‘좋은시정위원회’ 등을 통해 주민참여의 폭을 대폭 넓혔다.

혁신전쟁 VS 아름다운 경쟁

이러한 염 시장의 행정스타일은 지난해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과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 점에 대해 염 시장은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선 후 몇번 만났는데. 개인적으로 영광이죠. 서로 교감하는 게 많아서 그런 걸까요? 아마 오랫동안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점이 비슷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노력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제작소를 만들 때부터 함께 일을 많이 해왔고 당선 후에도 수원시에 들러 많은 것을 벤치마킹해 갔습니다. 지금 서울에서 추진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 사관제도 도입, 재개발 문제 등은 이미 수원시에서 도입해 추진하고 있는 것을 한단계 발전시키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로열티를 받아야 하는데.(하하) 아름다운 경쟁으로 봐주세요.”

 

서울시와의 ‘보이지 않은 전쟁’을 즐기고 있는 염 시장은 최근에도 일을 냈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수원시 평생학습관에 서울시장의 장서를 기증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이에 박원순 시장이 흥쾌히 승락해 소장도서 2만여권을 수원시에 기증하기로 했다.

 

인문학 도시 수원 만들기 말고도 염 시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역점 사업이 또 있다. 바로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다. 수원의 제10구단 유치는 프로야구 1천만 관중 시대를 여는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염 시장은 “제10구단 유치는 수원시뿐만 아니라 1천200만 경기도민의 자존심의 문제”라며 확고한 의지를 내비쳤다.

 

“오는 3월이 되면 수원이 프로야구 10구단의 연고도시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프로스포츠는 관중수요능력 등 시장성을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는데 수원의 경우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 있는 지리적 이점이 최대 장점입니다.

 

수원을 중심으로 오산·화성·성남 등 주변 도시의 인구를 합하면 500만명 이상입니다. 충분한 관중 수요능력과 기업선호도에서도 가장 유리한 곳이 바로 수원입니다.”

 

염 시장의 프로야구 1천만 관중시대를 완성하기 위한 목표는 수원·화성·오산 등 수원권 3개 도시 통합과도 연결된다.

 

통합과 관련해 다른 ‘속셈’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오해도 많이 받고 있는 염 시장의 속내가 궁금했다.

“통합이 되면 인구 200만명, 재정규모 3조원, 면천 1천㎦에 지역내 총생산 40조원이 넘는 대한민국 5대 도시의 위상을 갖게 될 것입니다.

 

통합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하나였던 과거 옛 수원으로의 복원입니다. 기득권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시민 중심으로 지역주민의 여망이 무엇인지, 미래지향적으로 고민한다면 잘 풀릴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염 시장의 시계는 24시간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아직은 ‘요령껏’ 일할만큼 내공을 쌓지 못했다는 염 시장은 시민들이 가려워 하는 부분이 어딘지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오늘도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아껴가며 수원 곳곳을 누비고 있다.

 

글_ 강현숙 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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