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시가운동으로 이풍역속을

얼마전 춘천지방의 시인들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찻집은 시가 중심을 살짝 벗어난 U자형 야산이 둘러쳐진 고즈넉한 남향에 자리하고 있었다.

 

차는 주인장이 텃밭이나 인근 야산에서 채취해 발효시킨 희한한 차들이 번갈아 나오고 있었다. 한옥풍의 다실에서 몇 순배의 끽다로 다담(茶談)을 나누고 난 후, 일행은 자연스레 그날의 주인공인 허전 시인의 시를 한 편 한 편 돌아가며 낭송하기 시작했다.

 

시의 주제는 거의 어머니를 소재로 하고 있었다.

 

‘서둘러 밥상 치우시고/설거지 끝내신 어머니가/윗목에 쪼그리고 앉으셔서/대야에 발을 담그시며 눈살을 찌푸리신다/엉금엉금 기어가 들여다보니/발뒤꿈치가 두꺼운 얼음판처럼 쩍쩍 갈라지고/붉은 핏물이 들불처럼 야울 거린다/고무줄 돋보기를 쓰시고/손잡이도 부러진 쇠칼로/ 조심조심 베어내는 굳은 살덩이에/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프게 떨어져 나간다/눈이 뜨거워/돌아 앉아 창 밖을 보니/아픔만큼 큰 눈송이가 펄펄 내린다’

 

허 시인이 어머니를 주제로 시를 쓰는 배경에는 사연이 있다. 그는 월남전의 수색병으로 참전했다가 베트콩의 총탄을 네 발이나 맞는 중상에서 살아남은 기적 같은 사람이다. 여생을 청송교도소 같은 격리된 세상을 찾아가서 그들을 시로 교화시키는 일을 천직으로 알며 실천하고 있다.

좋은 시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런데 거친 심성의 수인들은 아무리 좋은 강연이나 교화활동이라도 심드렁한 채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얘기나 어머니에 대한 시를 낭송할 때면 많은 재소자들이 숙연하게 눈시울을 붉힌다고 했다.

 

그래서 허 시인은 그들에게 어머니를 소재로 한 시를 쓰게 하고, 이 습작들을 일일이 읽고 교정해가며 문단에 등단도 시켜주고 있는데, 그들의 태도나 인생관이 몰라보게 달라지더라고 했다. 일찍이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듯이, 좋은 시는 이처럼 사람들을 속속들이 감화시키는가 보다.

 

며칠 전 저명한 여류 시낭송가 공혜경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 일간지 기사를 봤느냐고 했다. 나는 뻔하게 짚이는 게 있어서, 이미 가슴 아파하다가 스크랩까지 해놨다고 답변했다. 기사내용은 어느 가난한 형제의 자살사건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읜 40대 중반의 형은 그 동안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한 살 아래의 동생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굴착기 일로 생계를 이어오던 형은 건설경기의 퇴조로 일자리를 잃었고, 근래에는 인력시장에서 품을 팔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3년 전부터 통장 잔액이 바닥난 형제는 라면으로 연명하다가 급기야 13층 임대 아파트 거실에서 함께 투신자살했다.

청소년 정서 위해 시를 가르치자

 

여기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비극의 한 단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나의 마음을 아리게 한 것은 사건의 주인공이 시를 그토록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역경 속에서도 시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살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에게 그 같은 소박한 행복마저 허용하지 못했다. 세상살이에 시달리다 보면 심성이 피폐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이중삼중의 시련 속을 살아가면서도 따뜻한 시심을 잃지 않았다. 그의 남다른 위대한 정신의 일면을 접하는 느낌이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자신에게 시낭송을 지도받은 적도 있고, 지난해에는 서울시가 주최한 전국 시낭송 경연에도 출전했었단다.

 

그때 그는 용혜원의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속에서도 사랑을 읊조릴 수 있는 그의 정신세계,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하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자라야 할 젊은 세대들이 모진 폭력들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세상이 됐다. 국민개송 시가운동이라도 펼쳐서 이풍역속(移風易俗)하는 것이 상책임을 지혜로운 사람들은 안다.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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