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금년이 흑룡의 해라고 한다. 그렇지만 민속학자들은 흑룡이라는 말은 현대 상업주의의 산물이라고 하고 원래부터 용의 색깔론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 사실 ‘용’이라는 동물도 인간의 허구성 동물의 하나이다.
인간의 간절한 희구의 표현이라고 할까? 아마도 현대문명적인 언어로 대입한다면 트랜스포머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인간의 고뇌를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해결해 주는 절대존재이고 인간과 절대자의 중간지대에 있는 상상의 동물인 셈이다.
용이라는 의미 자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고 용이라는 존재가 여러 동물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 그리고 항상 난관의 발전적인 해결자로서의 상징이 내포되어 있는 상상동물이다. 아니 동물이라기 보다는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 더 강할 것이다.
인간 상상의 극치, 용
용이라는 창조의 동물이 가지는 인류 진화사의 의미는 대단히 특별한 점이 있다. 전곡구석기박물관의 후기구석기시대 동굴에 보이는 빙하시대의 동물그림 중에는 상상의 동물은 없다. 이 그림의 주인들도 현생인류이지만 이 당시까지는 상상의 동물이 필요 없거나 상상의 단계가 이에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은 어느 시대이건 인간들의 염원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행위와는 별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행위들을 하는 인간 고유의 정신행위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생각하거나, 사회의 공동선이 극대화되기를 기원하는 등의 생각을 하는 행위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 인류사에서 상상의 동물들이 나타났을까? 후기구석기시대에 이미 인간성의 표현은 동굴벽화, 사람시체의 매장,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거나, 몸을 치장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조각품을 만드는 등의 인간성의 표현은 전 세계의 유적에서 널리 보인다. 그렇지만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예술에는 사자의 탈을 쓴 사람은 보이지만 상상의 동물은 보이지 않는다.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 울주의 반구대 그림에서도 형상이 추상화되기는 했지만 그 속에 상상의 동물은 없다. 그런데, 문명의 시대에 접어들면 상상의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스의 신화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신화에서 보이는 반인반수 그리고 반수(獸)반조(鳥)와 반인반어(魚)등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나면, 또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전히 상상의 동물이다.
갈등의 응어리 풀어줄 흑룡의 해
용이 바로 그러한 것의 대표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 상상의 극치로서 용이 존재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상상의 동물들이 출현하게 되는 것은 교역이 보편화되고 원시사회들의 통합이 이뤄지는 신석기시대 다종족 또는 다문화사회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인간사회 속에 선과 악의 갈등과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커진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악의 응징과 욕망의 충족을 위한 문명시대의 정신세계 확장으로서 이 상상의 동물이 발명됐을 것이다. 아마도 현대문명사회에도 이러한 상상적 동물들은 우리 정신의 카타르시스로서 존재하는 셈이다.
금년도 용의 해, 특별한 시대적인 의미가 있다.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기술로 인한 인간소외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야기되는 갈등의 응어리를 풀어줄 해결사로서 흑룡이다.
금년도에 아마도 선거를 통해서 우리 사회속에 다면적으로 쌓여온 욕구불만과 기술문명과 제도와의 괴리가 심각하게 노증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고 살아가는 현실이 좋은 제도로 개선돼가는 순환이 이뤄지고 또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장점만을 모아서 융합돼 단군 이래의 최대의 사회 진화가 일어나는 한해가 됐으면 하는 것이 나 뿐 아니라 백성 모두의 바람이다. 흑룡이라고 부르는 의미가 바로 모든 색의 진정한 융합의 결과로서의 용이리라.
배기동 전곡선사박물관장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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