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삶과 종교]

소망교회를 담임했다가 지금은 은퇴하신 곽선희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고향에서 살 때 아래 윗집에 살던 동생 같은 4대 독자가 있었답니다. 집안에서 그 아이를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지 그 아이 말이라면 안 되는 게 없었답니다.

 

그러나 부모의 지나친 사랑 때문인지 이 아이는 자랄수록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진학은 했지만 공부는 안 하고, 등록금을 보내주면 그 돈으로 매일 술 먹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던 청년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군대에 가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잡았는지 훈련소에서도 성실하게 훈련을 받고 또 일선에 자대 배치를 받아 열심히 군대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이 첫 휴가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늘름하게 변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부모님도 ‘이제 우리 아들이 마음을 잡았구나’ 기뻐했는데 오랜만에 부대를 벗어난 자유로움 때문인지 그날 밤에 나가 다시 옛날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집에도 안 들어왔답니다.

 

그렇게 며칠을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목사님께 나타나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답니다. 왜 돈이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친구들 만나 정신 없이 놀다보니까 귀대할 날이 사흘이나 지나버렸다는 겁니다. 그냥 부대에 들어가면 엄청나게 맞을 것이 뻔하니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답니다.

 

그때만 해도 그 정도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돈을 빌려달라고 간청하는 청년을 믿을 수가 없더라는 겁니다. 돈을 빌려주면 그 돈으로 또 술 먹고 사고 칠까봐 “내가 너 말을 어떻게 믿냐”고 말하고는 돈을 빌려 주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을 찾아온 다음날 그는 부대로 돌아갔답니다. 그러나 늦게 복귀한 탓에 엄청나게 많은 매를 맞아야 했고 그날 밤 유서를 써 넣고 자살을 해 버리고 말았다는 겁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목사님에게 오기 전에 먼저 부모님께 찾아가서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런데 휴가 나와서 또 방황하는 아들을 보고 실망한 부모님이 “우리가 네 말을 어떻게 믿냐”면서 돈을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찾아온 것인데 목사님에게도 거절 당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에게 매를 많이 맞은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믿음을 주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제가 처음 만나교회 담임 목사가 되었을때 아직 마흔이 안 된 젊은 나이였습니다. 당시 만나교회는 2천명이 넘게 모이는 대형 교회였고, 교회에는 40 여분의 장로님들이 계셨습니다.

 

장로님들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 아버님과 비슷한 연배로 저를 어릴 때부터 쭉 지켜봐 왔던 분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어린 목사라고 무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를 교회 장로님들이 신뢰하고 믿어주셨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만나교회의 담임 목사인 저를 자랑해주셨습니다. 제가 만나교회의 리더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저를 믿어주셨던 장로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요15:16)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가지를 믿고 양분과 물을 공급해 주는 나무 본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내가 누군가를 믿어주면 그를 통해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늘부터 누군가를 믿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 사람을 통해 열매를 맺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김 병 삼 분당 만나교회 주임목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