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김인순의 ‘태몽’

설날을 맞아 많은 이들이 먼 길을 다녀왔을 게다. 올해는 연인원 3천100만 명이 고향을 찾았단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서기 488년 신라 비천왕 때부터 설을 쇠었다고 하니 그 유래가 1천500년을 넘는다.

 

설에는 설빔을 입고 설음식을 먹으며 설놀이도 하지만 청춘남녀에게 설은 결혼을 꿈꾸며 마음을 설레는 날이 아닐까 한다. 처녀는 시가댁, 총각은 처가댁 될 곳을 오가며 인사를 올렸을 테니까. 아마도 지난해에 인사를 올렸던 새댁과 새신랑은 다른 꿈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 앵두 같은 딸을 바라는 온 가족의 따듯한 웃음과 새댁의 수줍은 얼굴이 떠오른다. 아니, 아마도 새댁이나 집안의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 고모 중 누구는 태몽을 꾸었을 게 틀림없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줄기차게 여성미술과 여성운동에 힘썼던 김인순이 경기도 양평에 새로 터 잡은 뒤에 내놓은 최근 작품의 주제는 태몽이다. 태몽은 태아를 잉태할 징조의 꿈이다.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이이편(李珥篇)에 “어머니 신씨 꿈에 검은 용이 바다에서 치솟더니 침실로 날아 들어와서는 아이를 안아 신씨 품에 안겨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태몽은 우리 민족에게 보편 일상사다. ‘태몽’연작은 그런 꿈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태몽09-4’를 보자. 색동 띠를 액자형식으로 둘러놓은 이 그림은 영락없이 아들 꿈이다. 장수를 뜻하는 붉은 모란꽃과 이름 모를 꽃이 환하게 핀 대지 위에 녹음이 짙게 깔렸는데, 봉황을 닮은 꿩 한 쌍과 나무 사이로 여인이 누런 황금빛 구렁이를 업고 간다. 여인의 머리에 성스러운 빛 무리가 어렸고 어린 빛이 또한 색동이다. 꿈이 범상치 않다.

 

태몽의 미술적 표현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석된다. 우리는 오랫동안 삶의 판타지를 믿었다. 그러나 도시문명은 그런 신화를 상실하게 했다. 삶이 강퍅할수록 창의와 창조의 샘이 되었던 신화를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올해는 흑룡의 해가 아닌가.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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