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키우고 아픔 나누며…감동이 주렁주렁

훌륭한 스승이자 현명한 상담가로 거창하게 느껴지던 ‘멘토’는 이제 일상에서도 익숙한 말이 됐다. 꼭 대단하고, 즉각적인 성과를 내지 않더라도, 외지고 어두운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멘토들이 숨어있다. 상처입은 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보듬는, 우리 시대 멘토들의 가슴 따뜻한 현장을 찾아가 봤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매주 수요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내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경기필) 연습실은 제멋대로인 악기 소리로 가득 찬다. 경기필의 또 다른 작은 오케스트라 만들기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꿈 나누기’가 펼쳐지는 시간이다. 멘토인 단원들은 어린 멘티들에게 악기연주부터 음악의 아름다움까지 가르치며, 말 그대로 꿈을 나눈다.

 

지난 해 8월부터 펼쳐진 이번 프로젝트는 평소 악기를 배우기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과 경기필 단원들이 짝을 이뤄 진행하는 ‘멘토-멘티’형 수업이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학생 50여명이 참여, 전당에서 제공한 악기로 연주법을 배운다. 재능기부를 자처한 단원들은 한 사람당 두 명 안팎의 아이들을 맡고 있다. 음악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늘진 아이들의 심리까지 고려해야하는 고충도 있다.

불우학생 등 어린 멘티들에게 ‘오케스트라 꿈나누기’ 위한

악기연주 등 가르치며 멘토 단원들 재능기부

프로젝트를 총괄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최혁재 조지휘자는 “소통이 잘되지 않아 보육시설 담당자와 상담해가며 아이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기도 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러나 수업을 거듭할수록 아이들은 멘토에게 적극성을 배워가고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이혜림양(12)은 집에서 연습실까지 버스로 40여분 거리지만, 지각 한 번 한 적 없을 정도로 열심이다.

 

담당 멘토 황효연씨는 “악기연주에 흥미를 느끼며 점점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보람 있다”고 말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 중에는 ‘특별한’ 학생도 있다. 지적장애를 가진 윤성찬군(13)이다. 클라리넷을 맡은 성찬이를 가르치는 데에는 갑절 이상의 노력이 든다. 멘토 이범진씨는 손으로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준다. 이제 제법 높은 음도 낼줄 아는 성찬이에게 손뼉치며 칭찬을 하는 것도 선생님의 몫이다.

 

이범진씨는 “평소에도 전화를 걸어서는 연습 많이 했다며 자랑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라며 “악기를 다루며 즐거워하기 모습을 보면 덩달아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프로젝트의 멘티들은 오는 2월 말 연주회를 연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열심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낼 예정이다.

 

최혁재 조지휘자는 “연주회를 시작으로 각종 사회복지시설을 찾아가 아이들의 재능봉사까지 할 것”이라며 “앞으로 오케스트라 인원을 늘려 더욱 많은 꿈을 키우고,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국치매미술협회

“어르신들의 슬픔과 절망, 즐기면서 그리다 보면 서서히 사라지죠.”

 

신현옥 한국치매미술협회 회장(60)은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은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같이 그림을 그린다. 많게는 서른 살까지 터울 진 할머니들이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은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르는 어린아이가 된다. 할머니들은 매주 한 시간여씩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꽃과 나무, 어린 시절 고향의 풍경 등을 그리며 마음을 달래고, 즐거움을 얻는다.

 

서양화가로 개인 활동을 해오다 30대 후반부터 노인종합복지관, 치매노인센터 등에서 미술 치료 봉사활동을 시작한 신 회장은 90년대 초반 협회까지 꾸리며 오늘에 이르게 됐다. 치매노인에서 시작해, 형편이 어려운 일반 노인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매주 100여명의 할머니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르신들이 자신을 인지하고 그 인지를 통해 자신의 행복한 추억과 아팠던 기억을 다시 그림에 담아내요. 사라져가는 옛 문화, 과거의 경험 등을 그리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림에 풀어내는 거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아픔이 치유됩니다.”

심신이 편치않은 노인들에게 그림 그리며 마음을 치유

아픔다독여 가는 모습보면 큰 보람과 행복을 느껴요

실제로 수업에 참여하는 할머니들은 그림을 통해 무거운 과거를 덜어내기도 했다. 결혼 직후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전호임 할머니(81)는 스물 한살에 미망인이 됐다. 먹고 살아야 해 평생을 안 해 본 일이 없다. 다행히 16년 전 수원 보훈복지타운아파트에 보금자리를 얻었지만 혼자 우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1년 전 신 회장을 만나면서 일상이 바뀌었다.

 

“생전 처음 그리는 그림이 어찌나 재미난 지, 밤에 일어나면 그리고, 달력 종이 뜯어 그리고…. 그림 그리다 보면 다른 생각도 안 들고 잠도 잘와. 다 선생님 덕이지, 뭐.”

 

그림을 통해 노인의 마음을 꾸준히 위로해온 신 회장은 지난해 10월 수원시의 후원을 받아 ‘대한민국 청춘미술대전’을 열고, 할머니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신 회장의 바람은 앞으로도 할머니들과 그림을 그리며, 작품 전시회를 하고 자부심을 전달하는 것이다. 신 회장은 “머리와 마음이 온전치 않은 어르신들이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찾아가는 일, 자그마한 행복을 느끼는 일을 돕는 것만큼 값진 일은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1. 경기필 ‘오케스트라 꿈 나누기’ 수업중. 2. 멘토 이범진씨(오른쪽)가 멘티 윤성찬 군을 지도하고 있다.  3 신현옥 한국치매미술협회 회장(왼쪽)의 수업광경. 4.미술치료시간에 그림그리는 할머니들.

 

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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