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정치 지인인 한나라당 A씨와 민주통합당 B씨가 어렵사리 술자리를 했다.
A씨: 최근 우리당은 쇄신과 혁신을 부르짖고 있는데 좀처럼 쉽지 않아. 비상체제로 전환되면서 표면은 달라지고 있는 듯 한데 속내는 아주 딴판이야. 여전히 친박이니, 친이니, 쇄신파니, 개혁파니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은 좀처럼 포기하지 못하고 있어.
그러면서 그는 답답한듯 쓴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B씨: 우리당은 많은 기득권을 포기하며 야권의 군소정당을 끌어 모으는데는 일단 성공해 분위기는 괜찮아. 여기에 당지도부 선출을 위한 경연이 진행되면서 나름대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하지만 여전히 누구누구를 앞세운 분파경향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야. 조만간 제19대 총선을 위한 공천작업에 들어 가야 하는데 분명, 이때 각자의 몫을 주장하며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일 전망이지. 이렇게 되면 민주통합당이 다시 민주분열당으로 추락할지도 몰라.
B씨는 끝내 걱정인듯 A씨에게 다시 술 한잔을 권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듯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지난 28일 “현 정부의 국정 실패에 책임있는 사람들이 ‘나는 모르겠다’며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 이런 모습으로 국민한테 쇄신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정부와 한나라당 추락에 우선적 책임을 지고 사실상 친이계와 MB정부 핵심인사들의 용퇴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친이계는 “‘박근혜 비대위’가 5공화국 시절의 국보위냐”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당내 진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합민주당 역시 외형적인 모습은 평온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28일 제주도에서 열린 당권주자 첫 합동연설회에서 이같은 고민이 곳곳에서 표출되기도 했다.
박지원 후보는 “당 지도부가 한 세력으로만 가선 안 되고, 김대중 세력과 노무현 세력이 손을 잡아야 한다. 어떤 한 세력이 독점한다면 균형감각이 깨져 총선승리와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이강래 후보 역시 “이번 지도부는 계파를 초월해 철저히 능력 본위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와 B씨의 술자리는 이렇게 자당의 속앓이를 두고 한참이나 더 진행됐다. 이들의 이야기를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국민 C씨와 D씨는 눈을 흘겼다.
C씨: 정신을 못차렸어. 국민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저들은 그저 당권을 누가 쥐느냐에만 관심이 있잖아. 내년 총선이고 대선이고 다 투표하지 않을 거야. 정치하는 사람들이 무조건 싫은데 누굴 찍어.
D씨: 자네말이 맞아. 정치권이 국민들의 무서움을 잊어버린 것 같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인데 말이야. 그렇지만 자네 투표를 포기해서는 안돼. 잘못된 정치인,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정치권 이 모두는 일정부분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어. 반드시 투표해 이들을 심판해야 할 거야.
C씨와 D씨는 정치권 ‘심판’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내보이며 불편한 심기를 달래듯 건배했다.
연말 술자리의 최대 화두는 내년 총선과 대선이다. 정치권이 자기네들만의 이야기로 생활고를 겪는 국민들을 외면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행태를 국민들이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인가이다.
헌법 제24조에는 선거권, 제25조에는 공무담임권, 제72조 및 제130조 2항에는 국민투표권을 규정하고 있다. 참정권으로 이는 국민의 권리이자 책무이며 의무다. 이를 법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정치의 시작과 끝이 모두 국민들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경고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투표다. 신물나는 정치권을 바꾸기 위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정 일 형 경기일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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