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언저리에서 주변인들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와 ‘공감’의 변주를 통해 오히려 그 자신 중년의 쓸쓸함을 훌훌 털어내고 있는 시인이 있다.
지난 2005년 현대시로 등단한 박일만 시인이다.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역사에 맞서 힘이 은폐하는 생들을 불러내 보이면서 경험들을 기록하고 기억을 불러내는 일에 치열하게 몰두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온 박일만 시인이 등단한지 6년 만에 묶은 첫 시집 ‘사람의 무늬’(도서출판 애지刊)에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상황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형상화한 55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고영 시인은 “세탁소나 과일가게, 심지어 수화하는 여자에게서 발견한 무늬들은 그 볼륨이 우렁차고 깊기만 하다. 소외받고 고통받는 자들에 무한한 애정, 그것이 처세라면 나 또한 ‘어리석은 짐승’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리라”고 평가하고 “단 한 사람의 가슴이라도 얻기 위해 맨발로 길을 나선 박일만 시인의 여정에 동행하고 싶어진다”고 말한다.
시인은 가족들의 뿌리 깊은 상처를 오롯이 안고 살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중년의 쓸쓸함에 ‘지푸라기처럼 서걱대는 고독을 숨기며 새벽잠이 줄었다’.
특히 아버지의 한(상처)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껍데기처럼 비워진 아버지의 삶을 생의 중심으로 반복해서 불러내고 있다. 그것은 상처 입은 자에 대한 기억의 차원을 넘어, 그 기억 속에 새겨진 상처를 지금 여기로 불러내는 진혼(鎭魂)의 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이란 말이 있습니다. 좀 늦었지만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며 거기에서 사람들의 삶을 발견하고, 시를 얻으며 때로는 에둘러 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혼이 실리지 않는 다작을 경계하면서 늘 진행형 자세로…….”
시인의 말과 같이 그는 이번 시집에서 철저하게 사람에 닿고, 사람을 모시고자 했다. 낯설지만 따뜻한 사람의 등에 기대어 견뎌가야 하는 길을 더할나위 없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값 9천원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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