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
소설과 소설 사이의 ‘농한기’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책을 펴냈다. 소설도 수필도 아니다. ‘픽션이라는 형식으로는 다 주워 담을 수 없는 자잘한 세상사도 조금씩 찌꺼기로 남기 때문’에 펴냈다는 신간은 여러 책의 서문, 해설, 인터뷰 질문과 대답, 각종 인사말, 짧은 미발표 소설 등으로 구성됐다.
잡다한 글들을 철저히 모았다고 해서 제목도 ‘잡문집’이다. 하루키의 신간이나, 소설이 아니더라도 에세이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갸우뚱한 책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면 우리가 몰랐던, 혹은 조금 더 알고 싶었던 하루키의 세계가 정갈하게 들어차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말마따나 ‘미덥지 않은 자신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책을 내는 의미가 있다’는 그의 말마따나 서른 해 작가 생활의 발자취와 여정을 충실히 담았다.
책은 하루키가 손수 엄선한 69편의 미발표, 미수록 산문으로 꾸려졌다. 전체가 열 개의 범주로 나누어졌는데, ‘서문 해설’, ‘질문과 그 대답’ 등 영역이 분명한 범주가 있는가 하면, ‘음악에 관하여’, ‘눈으로 본 것, 마음으로 생각한 것’과 같이 주제가 같은 글을 묶기도 했다.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잡문집의 구성이 학술적 분류가 아닌, 어디까지나 ‘그냥 왠지’라는 느낌상의 구분이라는 그의 설명이 ‘참으로 하루키답군’하고 끄덕일 법도 하다.
각종 상의 수상인사말, 낯을 많이 가리는 그가 다른 작가를 위해 쓴, 흔치않은 서문, 좋아하는 재즈 등 음악에 관한 글, 다른 이의 책을 번역할 때와 자신의 책이 번역될 때의 입장 등이 ‘그냥 왠지’ 어울릴법한 순서로 나열돼 있다.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지만, 글마다 짤막한 설명을 다는 친절함은 잊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는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읽어달라’는 저자의 말처럼 부담없이, 책장을 넘겨보자. 평범함을 지향하는 비범한 작가의 잡다한 심경이 소설과는 또 다른 흥미로 다가올 것이다. 값 1만4천800원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생활 30년을 넘어선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품 50여 편이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명실상부한 세계적 작가다. 1979년 ‘바라의 노래를 들어라’로 데뷔한 이래 국내에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킨 ‘노르웨이 숲’, 아시아 작가 작품으로는 드물게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해변의 카프카’, 제2의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킨 ‘1Q84’ 등 발표한 작품마다 화제와 인기를 끌어모았다. 신비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소설과 개성적이고 친숙한 문체의 수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성보경기자 boccu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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