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핀 들꽃, 예술가 설기효

 

예술의 가치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아마도 그것은 우아미, 숭고미 따위의 정의된 아름다움일 것이다. 혹은 심미적 차원이 수반된 보편적 궁극의 예술이 그것일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겠지만 예술에 있어 반드시 지켜져야 할 가치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새로움의 추구이며 발칙한 상상력과 표현이다.

 

시대의 미술은 항상 발칙함 속에서 성장해왔고 엉뚱한 가운데 다음 시대로 넘어왔다. 예술은 과학처럼 상식적이지 못하다. 본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그대로 멈춰있지 않고 원래 그 자리에 없어도 될 것은 엉뚱하게도 그 곳에 위치하곤 했다. 마치 무슨 말만하면 거꾸로 해버리는 청개구리처럼 말이다.

 

여기 푸른 식물들이 흙을 뚫고 돋아나 있다. 빨간색, 노란색 등 고유의 색을 발하며 흐트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이다. 하나, 하나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들에 피는 꽃들의 군집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놓인 장소가 수상하다. 들로 산으로 지천에 깔려있을 것들이 하얀 벽면에 빛나는 조명이 비춰지는 실내공간에 놓였다. 이 공간은 얼핏 봐도 식물원이 아니다. 전형적 전시공간인 화이트큐브를 점거하고 선 들꽃. 당황스럽게도 하얀색 입방체의 공간을 가득 메운 이들의 향연은 설기효 작가의 작업이다. 앞서 예술은 과학과 달라서 상식적이지 못하다고 밝혔다.

 

그럼에 다소 엉뚱하고 비상식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자연의 일부가 동시대 예술의 공간 일부로 스며든 것이다. 눈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시각적 환영이 만들어주는 생경함을 즐기면 될 뿐이다.

 

설기효는 동양철학에 근거해 언어에서 오는 소리와 색을 기호로 치환시킨다. 그의 색은 오방색을 골자로 캔버스에 옮겨지곤 했는데 이와 더불어 소리는 언어의 자음과 모음이 나타내는 음률의 공식을 세운 뒤 다양한 악기로 변환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캔버스에 옮겨진 페인팅이 이번에는 현실의 공간에 놓인 자연물로 치환됐다.

 

기호화 과정을 통해 색상과 음을 조형언어화 시켰던 그의 작업에 새로운 시도가 실행된 것이다. 그는 마치 기호학자나 과학자라도 되는 듯 상식적 분석을 시도한다. 실재하는 현상에 수학적 데이터를 들이대 분석을 행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작가의 공식은 예상을 뒤엎는 비상식의 세계로 넘어간다.

 

색과 소리를 표현하는 일련의 작업은 결국 공식을 뛰어넘는 자연의 그것을 차용하게 된다. 어쩌면 설기효의 들꽃은 실재하는 것을 가상의 공간에 옮김으로써 파생되는 생경함을 통해 자연의 실재와 허상을 동시에 표현한 것은 아닌지.

조두호 수원미술전시관 수석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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