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이 보인다. 억눌렀던 마음은 고향 풀벌레의 화음만으로도 술술 풀리는 실타래처럼 가볍기만 하다. 숲과 농원을 껴안은 고향마을은 잠시 잃어버렸던 웰촌의 향수를 다시 피어오르게 한다.
불현듯 어릴 적 추억 속의 내 고향 추석풍경이 떠오른다. 가족 친지와 함께 차례를 지낸 다음 성묘를 마친 뒤 또래 아이들과 철없이 뛰놀던 황금들녘, 뒷동산 대나무를 잘라다가 곱줄을 달아 피라미를 낚던 개울천, 동구 밖 코스모스밭에서 술래잡기하는 중에 탐스럽게 익은 조롱박을 따다가 들켜서 술래가 된 일, 보름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골목골목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하루 종일 들렸었다.
추석을 한 달여 앞두고, 농업인들이 시름에 빠져있다. 올 여름 엄청난 양의 폭우가 쏟아져 많은 사람을 공포에 떨게 하고 농작물 침수 피해를 내더니 또다시 태풍 ‘무이파’로 인해 많은 농가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갈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퇴색돼가는 오늘날의 추석 풍속도가 고향 마니아들에겐 더없이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아도 초국적 자본의 힘에 눌려 쌀 개방이 현실화된 처지에서 내 고향 농촌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은 쌀 개방이 앞으로 우리에게 가져올 재앙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특히 햄버거를 즐겨 먹는 디지털세대는 쌀의 가치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농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농가의 생활과 농촌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아름답게 만들고 풍요로운 환경을 보전할 것인가. 앞으로 농촌을 찾는 도시민을 예전처럼 반길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이 앞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늘날 ‘추석 풍속도’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하지만 마음의 고향, 농촌을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앞으로 농촌은 새로운 도전과 더 없는 고통과 더 많은 인내가 동반되는 싸움터이기도 할 것이다. 고향마을의 추석전통과 옛 문화를 올바르고 가치 있게 재창조하기 위해서는 명절 때만이라도 내 고향 농촌을 열심히 찾아야 한다.
옛 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가위는 한 해 동안 피땀 흘려 지은 대가로 수확의 기쁨을 맞이하면서 이웃끼리, 마을사람들끼리 기쁨을 함께 하고 농사의 풍성함만큼이나 마음의 여유로움과 풍성함을 느낄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추석 명절때가 돼서야 뒤를 돌아볼 여유를 찾는다. 고향이 그리워지고 과거를 고마워한다. 그래도 그 때가 좋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들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복고주의고, 행동으로 표출된 것이다.
올 추석의 따스한 정을 우리 농산물로 주고 받음으로써 미풍양속의 계승 발전은 물론 기상악화로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농업인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우리 농업을 지키는 데도 큰 힘이 되었으면 한다.
때마침 농림수산식품부에서도 추석명절을 앞두고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전경련 회원사 등에 서한을 보내 “우리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인은 부모님과 형제자매· 친구들의 소중한 꿈을 담고 있는 분야라면서 우리 농업인들이 자랑스럽게 길러 낸 농축산물로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면 그분들의 보람과 자부심은 더욱 커질것”이라며 우리 농산물 선물하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민적 관심과 성원을 보내는 농업이야말로 최고의 경쟁력이다. 태풍과 폭우로 시름하는 우리 농민을 우리 스스로가 보듬을 때 그 농민과 농산품은 결코 외롭지 않다.
/강근태 농협중앙회 김포시지부 부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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