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격무에 시달리다가 쓰러진 가장이 근로 복지공단에 요양승인을 신청하였으나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불승인 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제1,2심 재판 결과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해 대법원에 상고한 후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대법원이 근로자의 얼울한 심정을 헤아려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상고이유서에 사고당시의 근로 환경, 질병으로 입원하기까지의 과정 등을 조목조목 설명하여 사건이 산업재해에 해당한다는 점을 밝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대법원으로부터 상고를 기각한다는 판결서가 날아왔다.
상대방의 답변서조차 받아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판결서의 이유에는 “상고이유를 이 사건 기록 및 원심판결과 대조하여 살펴보았으나,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 제1항 각호에 정한 사유를 포함하지 아니하거나 받아 일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그 법제5조에 의하여 상고를 기각하기로 하여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가 전부였다.
이른바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제도인데, 이는 형사사건을 제외하고 상고 이유가 법이 규정한 사유에 포함되지 않으면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1994년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에서 도입되었다. 위 제도의 취지는 남상고 방지와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기능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구체적 타당성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위 제도가 도입된 이래 대법원에 올라간 사건의 약 70%가 제대로 된 심리도 받지 못 한 채 심리 불속행으로 배척된다고 한다.
현재 심리불속행에 의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재판을 받는 국민은 자신의 권리가 평생을 좌우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 어떠한 과정에 의해 판결이 이뤄 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꽝’하고 구체적 이유 설시도 없는 통보를 받게 된다. 과연 담당 대법관이 재판기록을 검토했는지 여부마저도 의심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법관 1인에게 배당되는 사건이 연간 2천400건이라고 하니 대법관은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7건씩 처리해야 하는데 그 방대한 기록을 정독하여 합당한 결론을 유출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겠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재판과정에서 서면심리만 할뿐만 아니라 재판기일 지정 및 선고기일 예정통보도 하지 않으니 재판을 받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절차상의 예측기능성이 전혀 없어서 대법원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게다가 판결서상에 이유명시가 없으니 어떠한 사유로 상고인의 주장이 배척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심리 불속행하게 되는 판단기준도 가늠할 수 없어 향후 비슷한 사안에 있어서 구체적 대비책이 막연하다.
위 제도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은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심지어 심리 불속행 기각결정의 경우 인지액 전부를 반환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헌론의 극단적 입장은 심리 불속행 기각 판결은 침대길이(대법원의 인적 물적 역량)에 맞춰 사람(넘치는 상고 사건) 다리를 잘라버리는 것(사건을 걸러야 한다는 편의적인 생각으로 내려지는 심리 불속행 기각 판결)과 다름없다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심리 불속행제도의 개선책으로, 대법원은 전국5개 고등법원에 상고심사부를 두어 재판하게 하는 이른바 상고 심사 제도를 내 놓고 있다. 그러나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경기도에 고등법원이 설치되어 있지 않는 마당에 고등법원 단위로 상고심사부를 둔다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그 안은 경기고등법원 설치가 전제돼야 한다. 차라리 상고심사제도보다는 ,대법원이 물리적으로 사건 심리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대법관 수를 대폭 늘려 심리 불속행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절대적이고 통제 받지 아니한 자유재량은 남용을 불러 올 수밖에 없으므로 국민의 원성이 많은 심리 불속행 제도는 의당 혁파되어야 한다. 모든 사법제도는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위철환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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