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儀軌)는 조선시대 국가 주요 행사의 준비과정과 의례절차 등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놓은 ‘의식 또는 의례의 궤범이 되는 책’이다. 왕실의 혼인, 왕세자와 왕비의 책봉, 왕실 장례, 궁궐 건축, 무기 제조, 실록 편찬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옛것을 기본으로 새롭게 창조하라는 온고지신, 법고창생의 정신이 담겨있는 것이다. ‘화성성역의궤’는 그 가운데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화성 건설공사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완공까지의 전말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준공된 각 건물들과 공사에 사용한 각종 도구들, 그리고 주요 행사의 장면들을 세밀하게 목판으로 제작했다. 목판으로 첨부된 ‘낙성연도’ 그림은 당시의 축제와 공연예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며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이 그림을 남겨둔 선조들의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진 때가 200년 전 봉건 군주사회였다는 점에서 보면 정조가 지녔던 군주로서의 철학이나 백성에 대한 배려가 탁월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정조는 화성 축성에 참여했던 수원지역 백성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고위 관료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도 연희행사에 참석하게 했다. 축제의 프로그램도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든 신분을 세심하게 고려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엄격하게 격식을 갖춘 궁중무용이나 음악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겼던 광대재인의 놀이까지 어우러져 상하동락의 한바탕 축제마당이 펼쳐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임시로 설치한 무대 위에서는 북춤, 포구락 등 궁중무용이, 무대 아래에서는 사자춤과 산대희가 공연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함께 어우러진 소위 ‘열린 음악회’의 원조 격인 셈이다.
선조들 모습통해 많은 교훈 얻어
사자춤은 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놀이이자 연극이다. 우리나라 문헌의 첫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발견된다. 신라 말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오수’라는 한시에서 신라의 다섯 가지 놀이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 ‘산예’가 바로 사자춤이다. 오늘날 하회별신굿놀이, 북청사자놀이, 봉산탈춤 등에서 사자춤을 볼 수 있다. 탈춤 또는 가면극은 원래 야외극으로 상연되어 왔고, 파계승에 대한 풍자, 상전인 양반에 대한 모욕, 남녀 간의 갈등, 서민생활의 곤궁함을 보여준다. 특권계급의 허위와 위선에 찬 도덕주의에 대한 일종의 반항과 비판을 담고 있다. 민중극의 가장 일반적인 내용들이다.
산대희(山臺戱)란 ‘산 모양의 구조물에서 벌이는 연희’라는 뜻으로, 전설 속에 등장하는 삼신산을 형상화한 산대에서 펼쳐지는 각종 연희를 가리킨다. 그 기원은 신라 진흥왕 시대로 올라가니 우리 민족과는 긴 역사를 함께했다. 조선시대의 산대는 높이가 20미터 이상이었는데 좌산대, 우산대의 두 개 산대와 신선, 동·식물, 궁전, 사찰, 탑 등을 갖추어 놓고 연극과 줄타기를 비롯한 각종 놀이가 행해졌다고 한다. ‘낙성연도’에도 역시 두 개의 산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산대놀이는 오늘날의 대규모 야외축제의 모든 프로그램과 첨단 대규모 야외무대의 원형이다.
‘화성연극제’ 온시민 즐기는 축제로
이 옛 그림을 통해 정조가 오늘의 수원화성국제연극제에게 말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공적 자금으로 이루어지는 연극축제는 특정 소수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그러니 그 내용도 격식을 갖춘 정통 연극예술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공연까지 다양하게 담아내야 하고, 관객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또, 야외 연극과 축제 무대 또한 현대적 감성에 어울리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이것이 옛 그림 ‘낙성연도’에서 배우는 대동의 상하동락 축제, 연극축제가 시민들을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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