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는 성군이었다”

그날, 비가 왔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한여름 날씨였다고 전한다. 그가 뒤주에 들어간 1762년(영조 38) 윤 5월 13일은 양력으로 7월 4일이다. 뙤약볕 아래 밀폐되다시피 한 공간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으니 버티기는 힘들었을 터. 그의 죽음이 확인된 건 7월 12일이었다.

 

‘궁녀를 살해하고, 여승을 궁중에 들여 풍기를 문란시키고, 부왕의 허락도 없이 평양에 미행(微行)하였다…’ 형조판서 윤급의 청지기였던 나경원이 형조에 고발한 사도세자(1735~1762)의 비행이다. 여기에 더해 나경원은 세자가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고 고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는 첫째 부인이었던 정성왕후의 신위(神位)를 보러 창경궁에 들렀다 사도세자를 부른다. 그리고 세자가 늦게 나타나자 역정을 내며 칼로 자결을 명한다. 세자가 땅에 엎드려 애걸하며 빌었지만 노여움은 커져만 갔고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영조는 세자를 폐하고 서인으로 삼아 뒤주에 가뒀다. 그 때가 윤 5월이었으니 찌는듯한 더위는 배고픔보다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임금인 아버지가 세자 아들을 죽인 이 사건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로 영화나 연극, 드라마에 자주 등장했다. 한결같이 영조는 비정한 아버지로, 사도세자는 ‘광인’, ‘폭군’, ‘정신병자’ 내지는 ‘뒤주에 갖혀 죽은 불쌍한 왕자’로 그려졌다. 지난 해 KBS2 TV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도 2007년 MBC를 통해 방송된 ‘이산’에서도 모습은 비슷했다. 올초 극단 인혁이 대학로에 위치한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 무대에 올린 연극 ‘무섭고도 흉한 음모의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아버지와 계략을 짜 남편이 죄를 짓도록 만들어 죽게 했다는 설정은 상상력을 자극했지만 사도세자의 모습은 이전보다 한술더 떠 끔찍한 살인을 서슴지 않는 정신분열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4일 첫 방송된 SBS 월화사극 ‘무사 백동수’에서는 달랐다. 이재헌 작가의 만화 ‘야뇌 백동수’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영조나 사도세자, 정조가 주인공은 아니다. 정조의 호위 무관으로 동양 3국의 무예를 총망라한 무예서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실존인물 백동수의 얘기다. 원작에서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는 설정만 가져와 전혀 다른 이야기로 전개되며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다양한 인물들이 재탄생됐다.

 

하지만 사도세자가 폭군이 아니라 사실은 성군이었다는 색다른 해석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드라마속 사도세자는 총명하고 무예 또한 뛰어나다. 약관의 나이 때 세자시강원의 무학 백사광의 도움으로 장용위를 만들어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려 했지만 홍대주의 음모에 이루지 못하고, 10여 년 후 백동수 등의 아이들을 모아 다시 한 번 장용위를 재건한다. 영조의 모습은 더 파괴적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렀는데 좀 늦게왔다는 이유로 죽으라고 했던 비정한 아버지가 아니다. 노론의 기세에 밀려 아들의 죽음을 결정하지만 끝까지 살려내려고 노력하는 아버지다.

 

사극은 성인 뿐 아니라 학생들도 즐겨봐야 할 드라마다. 각색하거나 현대적인 해석을 곁들일 순 있지만 재미를 위해 역사를 왜곡해선 안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권순규 작가는 “원작에 사도세자가 실제로는 성군이었고, 폭군으로 묘사된 것은 역사적 왜곡이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며 “드라마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달 29일 사도세자의 249주기 기신제향 의식이 화성 용주사에서 열렸다. 용주사는 효심이 남달랐던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난 1790년 창건한 사찰이다. 효의 본찰인 셈이다. 사도세자의 짧은 삶을 회상하며 원혼을 달래고 명복을 비는 자리로 마련되는 기신제는 일제 강점기 이후 잠시 그 맥이 끊겼지만 2008년 용주사가 복원해 계승해 오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저래 죽어서도 부친의 곁에 있고 싶어했던 정조의 효심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박정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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