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을 비유하는 말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많다. 프랑스의 한 심리학자는 정치인들을 주술사에 비유했다. 정치인은 대중을 몽롱한 환각상태에 빠지게 한 뒤 개인숭배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주술사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 말이 정치인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면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정치인이 대중을 환각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 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이 공약이다. 일반 대중들도 경험적으로 공약의 상당부분이 지켜지지 않는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의 공적인 약속인 공약(公約)이 유권자 사이에서는 헛된 약속인 공약(空約)으로 해석된지도 오래다.
18대 국회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국회의원들의 공약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의원들도 임기를 정리하고 내년 총선을 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외부의 평가나 시선에 상관 없이 의원들마다 임기중에 자신의 각종 치적을 모아 의정보고서를 만들어 유권자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공약실천과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객관적 수치로 내 놓을 수 없는 사안이 많다. 또 복잡한 이해 관계 속에서 평가자에 따라 점수는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평가 대상 당사자의 개인적 활동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평가자가 스스로 인정하지도 않으려 한다.
이를 반영하듯 국회의원들도 출마 당시의 결의와 달리 공약 평가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역구 국회의원 237명 공약이행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했으나 이중 기간내에 125명만이 자료를 제출하고 47.26%인 112명이 내지 않았다. 경기지역의 경우도 42.9%인 21명이 공개를 하지 않았다. 제출하지 않은 의원들 중에는 4선의 야권의원도 있고 참신하게 평가받는 초선의원도 있다. 이들 모두 선거기간에는 공약을 지킬 것을 밝히는 등 매니페스토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키로 했었다. 하지만 막상 공약이행을 평가해 유권자에게 보여주겠다는 시민단체의 요구에는 묵묵부답인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경기일보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연속기획시리즈로 18대 국회를 진단하고 있다. 첫 진단은 선거때마다 등장하는 수정법 개정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확인했다. 수정법은 지역개발과 관련돼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다는 점에서 선거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3년동안 공약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낸 의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뉴타운 공약도 그렇다. 상당수의 민주당 의원들이 명품 뉴타운을 약속했으나 의정기간내 보여준 태도는 뉴타운을 주관해 온 경기도와 김문수 지사를 질타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자세로 일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약이 공적인 약속인데다 계약의 의미를 갖고 있는 만큼 정치인들이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유권자와의 계약을 파기한 것이다. 경인지역 국회의원들의 국정활동은 더욱 참담하다. 2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의 평가에서 14명의 대상 수상자에 한명도 포함되지 못했다. 53명의 우수의원에 10명이 포함된 것이 고작이다. 유권자와의 약속을 외면하고 국회활동에도 평점 이하의 성적표를 낸 경인지역 국회의원들의 두둑한 배짱이 부럽기까지 하다.
선거를 앞두고 정당마다 귀에 솔깃한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또다시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진 주술이 시작된 것이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이 놈의 주술은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선거시기만 되면 잘 먹히고 있다. 유권자들은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술에 걸려 길게 줄을 서 무작정 표를 찍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주술에 걸리지 않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동안 당했던 주술이 뭔지를 알면 된다. 마법의 세계와 같은 정치판에서 정치인들이 내놓는 지연이나 학연과 같은 감성과 실체가 없는 개발과 희망이라는 주술에 빠져들지 말아야 할 때다. 최종식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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