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만년문학 여는 첫 작품 소년 눈으로 본 산업사회 문제 날카롭게 비판해… ‘흥미진진’
칠순을 앞둔 소설가 황석영이 만년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첫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문학동네 刊)을 펴냈다.
이번 작품은 ‘한씨연대기’, ‘장길산’, ‘무기의 그늘’ 등 리얼리즘 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전반기 문학과 감옥 출소 후 써낸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에서 보여준 한국적 형식 실험이랄 수 있는 후반기문학을 거쳐 만년문학을 여는 첫 작품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생산과 소비와 폐기를 통해서만 지탱되는 자본주의 일반의 속성을 겨냥했다.
작품의 무대인 꽃섬은 현재 월드컵축구장이 들어선 서울 난지도의 옛 이름이다. 소설은 ‘딱부리’라는 별명을 가진 열네 살 소년이 폐품 수집꾼으로 일하는 엄마를 따라 꽃섬에 들어와서 겪는 일을 그렸다.
소년의 눈에 비친 꽃섬의 풍경은 기괴하다. ‘쓰레기들은 더럽고 볼썽사나워 보였지만 검고 희고 푸르고 노랗고 알록달록 반짝이기도 하고 매끈거리기도 하며 네모나고 각지고 둥글고 길쭉하고 흐느적거리고 뻣뻣하고 처박히고 솟아나고 굴러내리고 매캐하고 비릿하고 숨이 막히고 코가 쌔하고 구역질나고 무엇보다도 낯설었다.’
이런 추하고 더러운 곳에서 도시로부터 내몰린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나라도 폐품을 더 차지하려고 악다구니를 쓴다. 작가는 소년의 눈을 통해 이곳이 도시문명에서 얼마나 고립된 낯선 세상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욕망과 소비와 폐기를 반복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낯익은 것임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작가는 꽃섬을 그저 버려진 공간으로 취급하는 대신 현대문명에 대한 저항과 대안의 공간으로 제시한다. 인간과 정령, 문명과 자연의 경계선을 오가는 ‘빼빼엄마’를 중심으로 ‘김서방네 식구들’과 아이들이 소통하게 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지배하지 않는 다른 세계를 상상한다. 화재로 불타버린 꽃섬의 폐허에서 딱부리가 빼빼엄마와 함께 지나간 시대의 유물들을 한데 모아 감춰놓는 결말은 인간성 회복에 대한 즐거움과 두려움을 드러낸다. 값 1만1천원 윤철원기자 ycw@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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