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김 美대사 부친, DJ납치 명령에 "대통령 친필 서명 있어야"

父 주일공사 역임, 신군부 집권기까지 한국정부와 특별한 가족사

1882년 한미 수교 이후 129년만에 처음으로 한국계 미국인이 주한미국대사에 지명됐다. 바로 성김(Sung Kim, 한국명 김성용 51) 6자회담특사가 주인공.

 

한국인의 피를 갖고있는 만큼 그의 독특한 가족사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김대중 납치사건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아버지 김기완(김재권으로도 불림) 전 주일공사에 대해 정치권의 관심이 높다.

 

재미 블로거 안치용씨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따르면 당시 김기완 공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사인을 확인하지 못하면 납치를 실행할 수 없다'며 반대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전 공사는 1973년 김대중 납치 지시가 내려오자 당시 이철희 중앙정보부차장에게 강력히 반발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서명을 확인하기 전에는 실행할 수 없다'고 버텼고, 이에 이철희 차장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부장에게 직접 이야기하라'고 답했다.

 

 
또 납치 직후에도 김 전 공사는 'DJ 를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살려서 돌려보내야 한다', '불필요한 희생은 없어야 된다' 등의 지시를 내렸다고 이 블로그는 전하고 있다.

 

실제 지난 1987년 이 사건이 납치사건인지 살해미수사건인지 논란이 일자 김대중 대통령은 '로스엔젤레스에 살고 있는 김기완 공사에게 물어보면 잘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김 전 대통령도 김 전 공사의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성김이 6자회담특사로 임명됐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진영에서는 내부적으로 적절성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아버지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 삼거나 외부에 말하지 말라"고 했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시크릿 오브 코리아는 국정원 진상조사보고서를 인용해 김 전 공사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의 인연도 각별했다고 전하고 있다. 김형욱 전 부장의 부인 신영순이 1973년 1월 5일 극비리에 미국으로 출국할 당시 재일교포 명의의 여권을 김 전 공사가 제공했다는 것.

 

그러나 김형욱 전 부장이 1974년 김 전 공사에게 50만 달러를 주며 반(反)박정희 운동이 벌이자고 제안했을 때 김 전 공사는 단호히 거절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김 전 공사는 1974년 도미(美)한 뒤 줄곧 1급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다 1979년 3월 27일 한국보험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1982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뒤 1994년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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