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Metro] 건강한 도시 만들기
오화분 경로효친자원봉사회 회장
8년째 노인들에 따뜻한 점심/재료부터 위생까지 직접챙겨
지역에서 ‘봉사의 대모’ 소문/봉사정신 자녀에게 ‘대물림’
매일 점심때만 되면 오산시청 지하 구내식당에서는 수백 명의 노인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꼬부랑 지팡이에 의지한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90세가 훌쩍 넘어 보이는 할머니, 불편한 몸을 조금이나마 젊은 친구에게 의지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까지 힘에 겹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이 곳을 찾는 것이다.
오화분 경로효친자원봉사회 회장(68)과 회원들이 8년째 정성들여 차려주는 맛있는 가정식 백반으로 한 끼의 식사를 대신하기 위해서다.
1인당 2천 원씩 시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하루에 160~170명에 달하는 끼니 걱정 노인들에게 일주일에 5일씩 다른 식단을 제공하기는 쉽지만은 않다.
여기에 비록 봉사대상은 아니지만 500여 공직자 중 절반 이상이 같이 식당을 이용하다 보니 신경 써야 할 일도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의 하루는 오전 9시 30분을 전후해 구내식당에서 음식재료를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싱싱한 재료를 갖고 맛있고 정성스런 음식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 바로 식재료 선택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좋은 음식재료가 이 식당을 이용하는 모든 노인들의 건강과 입맛을 결정한다고 그녀는 굳게 믿는다.
오 회장은 “처음 시작할 때는 새벽부터 직접 장에 나가 손수 식자재를 구매해 왔으나 이제는 주문만 하면 좋은 재료들을 가져 와 큰 수고를 덜고 있다.”라며 “나쁜 재료를 가져오면 퇴짜 놓기를 반복했더니 이제는 상인들도 인식을 달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오 회장의 수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매주 제공될 식단도 꼼꼼히 따져가며 직접 짜고 바닥 및 조리대 등 시장 곳곳의 위생 상태도 챙긴다.
그렇지만, 그녀는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한 공무원이 ‘노동의 대가를 주겠다.’라고 했다가 혼쭐이 난 일화는 웬만한 시청 공무원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녀는 스스럼없이 말한다.
“자원봉사가 별거 있나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봉사죠.”라고.
오 회장이 자원봉사와 인연을 맺고 어려운 이웃을 챙겨 온 것은 벌써 30년이 넘는다.
인천에서 출생한 그녀는 26살이 되던 해 남편 이영재씨(71)와 백년가약을 맺고 수원에 거처를 정했으나 연이은 남편의 사업부진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남편은 사업가의 꿈의 접고 공직자의 길을 택했으며, 이로 인해 오산에 둥지를 틀게 됐다.
이때부터 오 회장은 봉사활동과 인연을 맺게 된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권유해 농협 사랑방에서 사랑의 쌀 한주먹 모으기에 나서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봉사란 것은 별다를 게 없다’고 단언한다.
이 때문에 그녀의 봉사활동은 낮은 곳에서 얻어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함으로 다가갔다.
”둘째를 업고 농협 봉사단체 ‘사랑방’에 들어가 빈병과 못 쓰는 종이를 줍고, 쌀을 아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줬어요. 그랬더니 정말 고마워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된 오씨의 봉사활동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산읍 시절에는 새마을 부녀회에서, 오산시 승격과정에서는 추진위원으로, 자율방범대에서는 지역의 파수군으로, 학교주변에서는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잠시도 쉬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얻은 별병은 “오산 최고의 봉사자”이자 ‘아줌마 또순이’다.
이런 봉사활동 때문이었는지 지금의 150여명에 달하는 회원이 있는 경로효친자원봉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렇게 일을 하다보니 지역 곳곳에 숨은 안타까운 이야기도 많이 듣고, 때로는 아픈 기억에 잠을 설칠 때도 적지 않다.
미역국을 드시면서 눈물을 흘리던 할아버지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렵게 찾아 와 손을 잡아주던 할머니는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날 점심 국으로 미역국을 끓였는데 한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자네가 내 딸이야’ 하시는 것입니다.그래서 깜짝 놀라 물었지요. 그랬더니 생일인데도 찾는 자식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에요.”
이날 오 회장은 정말 마음이 아팠다.
또 어떻게 오셨는지 모를 정도로 불편하셨던 할머니 한분이 찾아와 내 손을 꼭 잡고 ‘이제 못 올 것 같아서 보고 싶어 왔어. 그동안 고마웠어’라고 하더니 끝내 세상을 등졌을 때도 오 회장은 어머니를 여의 것처럼 가슴이 미어지는듯 했다.
봉사는 단지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해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했다.
그러면서 오 회장은 ”봉사를 한다는 핑계로 시어머니에게 효를 다하지 못했고 가족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가장 죄스럽다.”라며 “항상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같이하는 그녀의 봉사정신은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 남양주에서 살고 있는 딸 이명자씨(45)는 간호사로 근무하면서도 교회 등을 통해 어머니와 같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것이다.
오 회장은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제 딸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라며 “생을 마감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봉사할 생각”이라며 말을 맺었다.
오산=정일형기자 ihjun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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