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시대 곧 온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대통령 입후보자는 당선이 어렵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해야 된다. 국방부가 이번 개정한 장교 임관식 선서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국방부는 “민족을 위한다”란 선서 내용을 “국민을 위한다”라고 바꿨다. 시대의 조류다.

 

민족지상주의의 폐쇄사회는 세계화시대에 뒤떨어진다. 세계는 지금 닫힌 민족 개념의 시대가 아니다. 열린 국민 개념의 시대다. 단일문화가 아닌 다문화로 가고 있다.

 

단일민족이 더는 자랑이 아니다. 한무제(漢武帝)가 황해도 등지에 한사군을 두었으며 거란이나 말갈족이 귀화하여 사성(賜姓)을 받기도 하고, 중국의 당·송·명나라 귀족이 한반도로 망명해와 우리 성씨의 시조가 되기도 했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몽고항쟁 등 오랜 전란 또한 겪었다. 이래서 단일민족이라고 하기엔 어려웠지만, 어쨌든 그동안 단일민족이라고 해왔다.

 

도내 다문화가정 전국의 27%

 

한데, 이젠 진짜 단일민족이 아니다. 귀화 및 결혼이주여성이 도내에 4만9천850여명이다. 전국의 18만1천100여명 중 27.4%다. 경기도에 다문화가정이 가장 많다. 도내 다문화가정은 2006년만 해도 1만8천420여명이었다. 불과 5년 사이에 170%나 늘었다.

 

내년 12월19일은 제19대 대통령 선거 투표날이다. 첫머리에서 말한 대로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 않고 ‘민족을 위한다’는 대통령 입후보자는 다문화가정의 표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국내만도 아니다. 국외 역시 마찬가지다. 내년 대통령 선거엔 해외국민도 투표한다. 해외국민 가운데도 또한 다문화가정이 많다. 민족이라고 하면 이질감을 갖고 국민이라고 해야 동질감을 갖는 연유다. 해외국민 550만여명 중 유권자는 약 150만명일 것으로 당국은 추산한다. 대통령 선거가 20만~30만표 차이로 당락이 판가름나기도 해, 무시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인 것이 해외국민 유권자다.

 

다문화가정은 지금도 많지만 해가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출신국 수 또한 많다. 경기도에 의하면 70여개국에서 왔다. 많긴 하나, 놀랄 일은 아니다. 통일부 통일원 자료에 의하면 우리의 해외국민이 나가 사는 나라는 140여개국이다. 가히 5대양 6대륙에서 와서 살고 또 나가 산다.

 

다문화가정만이 아니다. 다문화사회가 곧 닥친다. 도내 다문화가정 자녀 수가 근 3만명인 2만9천900여명이다. 아마 전국적으로는 5만명에 육박할 것이다. 이들 중엔 중학생들이 많다. 앞으로 10~15년 뒤면 다문화가정 자녀의 사회생활이 본격화된다. 사회 각계의 활약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어느 유명 여배우는 옛날에 딸이 흑인을 사윗감으로 선보여 결혼은 시켰지만 처음엔 충격을 받았노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딸은 유학 간 미국에서 신랑감을 데려왔다. 하지만 이젠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일이 곧 생긴다. 다문화의 보편화, 즉 다문화사회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다. 예컨대 다문화가정 자녀를 며느리 삼고 사위 삼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사자들이 서로 좋다면, 부모 또한 제3자다. 머지않아 이런 때가 온다.

 

민족 개념보다 국민의 시대

 

더불어 산다. 영국의 앵글로색슨은 어느 민족 못지않게 배타적이었다. 그런 영국에서 지금은 많은 이민족이 함께 산다. 지구촌이 이렇게 돌아간다. 우리의 다문화는 많이 늦은 편이다. 과도기다. 사회적 관심을 갖는 것은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수원지검 여주지청의 다문화 이주여성을 위한 초청 행사, 새마을운동단체의 반찬 만들기, 주부교실의 김장 담그기 체험 등은 그 같은 사례다.

 

우리에게 민족의 개념은 친일 청산까지다. 나라가 없었던 시절, 반민족 행위가 친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하나 민족을 내세워 더 얻을 것은 없다. 지구상의 분쟁은 민족 우월의 사고 방식이 부른 갈등이다. 국민의 시대다. 세계적 인종시장이 미국이다. 없는 민족이 없다. 이런 미국이 초강대국인 것은 여러 인종을 하나의 고리로 엮은 국민이란 이름 때문이다.

 

‘우매한 자는 모자를 눌러쓰며 보고, 현명한 자는 모자를 벗어들고 본다’는 것은 중국 속담이다. 다문화는 조만간 사회생활에 변화를 가져온다. 이에 모자를 눌러쓰고 부정적으로 보는 우매함보단, 모자를 벗고 보는 긍정적 시각이 행복을 가져온다. 국민이란 이름은 그만큼 위대하고, 국가의 소임은 그토록 막중하다.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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