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제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예술축제에는 전략이 있을까?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를 체계적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 이뤄가는 전 과정이 전략이다. 이 불가결한 전략이라는 요소 대신 추상적 구호와 환상이 국내 축제를 점령하고 있다. 발전을 위한 토대는 마련하지도 못한 채 축제의 수만 늘어가고 있다. ‘세계적’이라는 구호를 걸어야 한다는 강박증만 남긴 채.

 

세계적인 연극제는 말 그대로 세계적이며, 몇 개 없다. 이들의 예산은 최소한 몇 백 억 이상, 거기에 치밀한 조직과 운영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쉽게 떠올릴만한 예로 아비뇽축제가 있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넘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그 정도 규모의 투자를 60년 이상 해 왔다는 것이다. 단순한 논리 아닌가. 그래야 세계적인 축제가 될 수 있다. 우리와 비교해야 할 첫 번째 사항이다. 짧은 기간 안에 세계적인 축제를 만든다는 것은 환상이다.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안정적으로 일하는 전문 인력 조직이 없다. 축제 때 임시 조직으로 운영하다가 축제가 끝나면 철새처럼 사라진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반짝 아이디어에만 매달리다 보니 철학은 없고 온통 구호와 무늬만 난무한다. 이것이 우리 축제의 현주소다.

 

지역민들 사랑부터 받아야

 

연극축제도 예산 문제나 열악한 연극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쉬운 길만 택한다. 이러다가 연극도 관객도 없이 그저 구호만 무성한 연극제로 추락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생긴다. 축제의 차별성이나 독창성에 대한 강박증도 있다. 지역의 연극제에 적용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한, 피상적이고 안일한 접근이다. 대도시가 아닌 이상, 연극문화 관련 기반이 얼마나 열악한데 연극적 차별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관객도 없고 창작집단도 존재 자체가 쉽지 않다. 관련 인프라 하나 없이 1년에 한 번 연극제를 한다고 해서 갑자기 연극문화가 생기고 문화도시가 될까? 이런 여건으로 남들보다 돋보이려는 노력을 한다는 자체가 외향적 성과 추구라는 허튼 미망에 빠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차별성, 독창성을 주장하기보다 연극이 지역민의 생활에 스며들어 확산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연극에 대한 환상 깨기가 필요하다. 연극을 만만하게 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연극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연극 한 편 안 본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연극이 좀 더 가치 있는 무엇을 찾거나 행복을 찾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구청이나 주민자치센터의 문화 프로그램에 연극 교실 하나 만드는데 큰 돈 들지 않는다.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것이다. 쉽고 가벼운 시작으로 연극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 연극과 아무 상관없는 일상을 사는 시민들이 모처럼 연극제에서 마련한 연극 한 편에 예술성, 실험정신을 들먹이면 다시는 연극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연극과 친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단계를 거치며 취향도 생긴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축제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이 무대에 올려져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지자체·연극계·주민 비전 공유를

 

단순히 1년에 한 번뿐인 행사 치르기라면 번듯한 조직도 필요 없다. 연극축제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상설조직이 필요하다. 축제는 사람이 대상인,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노동집약적 특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연극제가 지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 축제로 성장하는 과정은 먼 길 가는 나그네의 여정과 닮았다. 지자체와 연극계, 그리고 지역민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면서 단계별로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그래서 연극제에 반드시 전략이 필요하다.  김동언 희대학교 아트기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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