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나들이> 달팽이들 하재영 著, 창비 刊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상처가 두려워 눅눅한 반지하 방에 처박혀 지내고, 친구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교실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꺼내 읽으며 고독을 감춘다.
2006년 계간 ‘아시아’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 하재영씨의 첫 소설집 ‘달팽이들’(창비 刊)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부분 도시에 사는 외로운 여성이다.
책에는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아직 성인 여성이 되지 못한 소녀(타인들의 타인), 수없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어떤 지속적인 관계도 가질 수 없는 20대 여성(고도리), 타인과의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20대 독신녀(달팽이들)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내면적으로는 남성과의 지속적 관계에 대한 근원적 불신을 하고 있으며, 여성들끼리조차도 연대의 고리를 찾지 못한다.
무자비하고 쓸쓸한 도시현실
다양한 캐릭터 단편으로 엮어
표제작인 ‘달팽이들’의 주인공은 ‘관계의 부재’라는 장점 때문에 전공과 관계없는 웹디자이너를 직업으로 택한다. “상처받고 싶지 않고 상처주고 싶지 않다면 최소한의 관계만 유지하라”고 스스로에게 충고한다.
또 ‘타인들의 타인-17세’와 ‘타인들의 타인-18세’는 상처받기 쉬운 시기인 사춘기, 그래서 더 아픈 학창시절의 콤플렉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이 두 연작소설은 무용을 전공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주인공은 자신보다 더 예쁜 동생과 친구가 부럽다 못해 밉다. 어릴 적 동생을 따돌리고 나와 놀던 옆집 소년이 몇 년 후 훌쩍 커 나보다 우월해진 동생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봉곳하지 못하고 납작한 가슴과 엉덩이에 대한 열등감은 발레 의상이 잘 맞는 몸매라는 우월감으로 변하는 듯했지만, 이 역시 긴 팔다리와 완벽한 비율을 가진 친구 앞에서 무너진다.
지난해 유명 연예인의 자살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스캔들’을 발표했던 하재영의 이번 소설집은 좀 더 무자비하면서도 쓸쓸한 도시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값 1만1천원. 윤철원기자 ycw@ekgib.com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