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군 통합 문제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난리를 겪었다. 그 많은 논란과 예산을 들이고 주민의 진정한 의사도 무시한 채 강행했지만 마산과 창원, 진해를 창원으로 통합하는 것으로 끝났다. 지금 창원에 가보면 통합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소속기관으로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가 출범을 했다. 위원회의 기능으로 주민자치, 경찰자치, 교육자치나 기능개편 등도 있지만 이들 기능은 이미 다른 대통령소속위원회인 지방분권촉진위원회의 기능과 중복된다. 위원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핵심은 역시 시·군통합여부에 놓여있다.
시·군 통합문제는 국가의 뿌리를 재편성하는 작업인 만큼 확실히 검증된 이론 위에 장기적인 구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뿌리가 썩거나 기능이 마비되면 줄기도 가지도, 잎도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수십 배의 자치역사와 시행착오를 가진 선진국들의 경험을 참조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 지자체당 규모는 세계 최고
최근 스위스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통합에 대한 찬반 논의가 한창이다. 스위스는 750만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1850년에 3천203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있었으나 2010년 말 현재 2천549개가 있다. 2011년에는 37개의 지방자치단체가 통합으로 더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에서 가장 큰 도시인 취리히는 주민수가 약 34만이고, 가장 작은 지방자치단체인 코리포는 12명의 주민을 가지고 있다.
평균으로 보더라도 주민수가 3천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지방자치단체들이다.
스위스 구역개편의 목표는 칸톤에 따라 다르지만 주민수를 기준으로 2천명에서 5천명 정도로 개편하는 데 있다. 스위스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이상은 주민수가 900명 미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1년 군사쿠데타로 기초자치단체인 1천407개 면과 85개 읍의 자치권을 폐지하고 140개의 군을 기초자치단체로 전환함으로써 스위스가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통합의 목표치를 50년 전에 이미 50배나 초과 달성한 셈이 된다. 그리하여 한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시·군·구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미 실명이 통하는 지역공동체로서 기초지방자치를 우리는 포기했다고 보아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규모가 클수록 효율적이라는 가설을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지방행정을 이미 실시하고 있어야 한다. 스위스보다 우리의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약 70배나 크므로 그만큼 효율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처리하고자 하는 업무나 지방자치단체의 지리적, 인문적, 경제적 환경에 따라 적정 규모가 각각 달라질 수 있으며 특히 내부적 역량이나 행정개혁 등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자체 협력으로 지방행정 개혁을
지방자치단체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반드시 통합을 통해서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개 혹은 다수의 지방자치단체가 다양한 방법의 협력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외국에서는 큰 지역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백, 수천, 수만 개의 지방자치단체조합을 만들어 해결하고 있으나 우리는 법전에서 잠자는 제도일 뿐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시·군 통합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매달려 왔으나 이제는 시야를 넓혀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은 시·군 통합을 위해 쏟는 노력과 비용을 지역의 공동체와 그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효율성과 역량신장을 달성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방안과 지방자치단체의 효율성과 예산 절감을 위한 지방행정 개혁을 실현하는 데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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