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흔 두 번째의 삼일절을 맞는다. 1919년 3월1일 활화산같이 용솟음쳤던 선열의 민족자주성 열망과 평화를 위한 고귀한 희생에 고개 숙인다.
해마다 삼일절이면 만세운동의 정신을 기려왔다. 그러나 행사만의 의미 외에는 별로 없지 않나싶다. 지금의 물질적 풍요는 가져왔지만, 그 정신은 잃어버린 까닭이다.
선열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 걸고 독립을 외쳤건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 숭고한 정신이 이미 오래전에 퇴색된지조차도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이 땅은 정체성 혼미라는 심각한 사회적 중병을 앓고 있다. 그로 인한 파장은 극도의 배타적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만 치닫고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경제와 관련된 문제야 글로벌 시대의 추세이니 어쩔 수 없다손치더라도, 정신은 아직도 일제가 심어놓은 반도사관과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 역시 식민상태가 아니고 무엇이랴.
퇴색된 3·1만세운동 정신
우리 사회는 정신적 빈곤과 광기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어 가고 있다. 이른바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는 사회지도층이라는 자들마저 이합집산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일말의 가책도 없이 버젓이 국부를 유출시키는가 하면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피해를 끼치기 다반사다. 일부 양식 있는 사람이나 단체의 항의 및 질책이 있지만 그때뿐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잃어버리고 같은 작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일제가 민족말살을 위해 심어놓은 식민사관의 덫이다.
가슴 뜨거운 젊은 사학자들은 절규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된다고. 그러나 위정자들은 우선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급하다며 입을 막아 왔다. 잘 먹고 잘 살아보자며 우리의 옛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것의 경중과 득실을 따지지도 않았다. 행장에서부터 신주와 나랏일이 담긴 서책들마저 버렸다. 살가운 인정은 사라졌으며 물질에 대한 탐욕과 집착은 인륜과 천륜까지도 내팽개쳐 버렸다. 이것이 이제 사회 도처에서 창궐하여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한다.
뼈 아픈 이야기지만, 결국 숭례문도 그래서 잃어버린 것이다. 콩 심은데 콩 난다고 했다. 역사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고, 그것 없어도 잘 살아왔어! 이런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팽배해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다.
오늘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으로부터 당하고 있는 민족적·국가적 수모도 그와 무관치 않다. 그네들은 역사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고 없는 역사도 만드는데, 우리는 있는 역사도 쳐다보지를 않는다.
잃어버린 역사의식 찾아 나서야
이제 이 땅은 새 역사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에 서있다. 92년 전,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고도산업화에 떠밀려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장엄한 우리의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 삼일만세 운동정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어려울 때마다, 슬기와 용기로 극복한 민족이다. 그래서 반도의 작은 나라가 아직까지 같은 언어와 생활방식을 가지고 끈질기게 이어 온 것이다. 600여 차례가 넘는 외침에서도 그 힘을 원동력으로,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것이 흔들리고 있다. 역사의식의 부재와 물질적 향락만을 추구하는 못된 국민성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이제 먹고 노는 일에서 벗어나 조금씩이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한다. 주변을 돌아보라. 역사의식 없는 민족이 존재하는가를.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부터라도 잃어버린 뿌리찾기를 해야 한다. 한 나라의 진정한 힘은 거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장병영 역사운동가·민족혼 되찾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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