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도시 수원은 정조의 꿈이다

찰리 채플린이 감독과 주연을 한 ‘모던 타임즈’란 영화가 있다. 산업화를 통해 물질적인 풍요를 얻는 인간이 주객전도돼 기계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폐단을 꼬집은 영화다.

 

서구산업을 받아들인 우리 사회도 급속한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이룩했다. 우리는 이러한 미증유의 변화와 산업발전을 압축성장이라고 일컫고 있다. 오늘날 산업화와 도시화는 사람들에게 편리함과 여유를 안겨줬다. 그리고 인터넷과 교통·통신수단의 발달은 우리사회의 시공간 거리화를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사회는 인간 중심에서 익명성의 사회로 변질됐으며 더 심각하게는 도시 기능에 매몰돼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반성일까? 최근 사회 일각에선 사람과 인문학이 중시되는 경향으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기술의 발달과 도시화로 결핍된 인간의 존엄성을 인문학을 통해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문학 정신이 이 시대에 다시금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부풀어 오르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사람 중심이고, 왜 인문학인가? 그것은 물질적 풍요가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을 깨우치고 있음이다. 몰인간적 도시에서 사람 중심의 사회 본래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에서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인문학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종교학, 예술, 음악, 미술,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학, 역사, 철학으로 요약되기도 한다. 영어로 인문학을 휴머니티(humanity)라고 하는 것도 인간성, 인간적인 것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다운 삶과 어떤 것이 인간을 위한 일인가를 모색하는 규범적, 윤리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수원에선 이와 같은 사람 중심의 인문학도시를 추진하고 있다. 수원에 사람 중심 인문학도시가 중요한 이유는 정조의 통치 철학과 그 맥을 같이한다. 정조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성군이자 백성을 위했던 민본군주다. 특히, 격쟁은 정조가 백성과 더불어 억울한 민원을 논했던 소통의 상징이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융릉천도 후 12년 재임 동안 13번의 능행차를 한 효의 왕이다. 낙남헌을 건립하고 수원 백성을 위한 위로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수원을 백성을 위한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정조가 세운 도시가 바로 수원이다. 그리고 지금 수원의 시정 철학은 ‘사람이 반가운 도시 휴먼시티’다. 이는 결국 정조의 민본통치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문학 도시를 만들겠다는 수원시의 선택은 당연한 귀결이다. 사람을 시정의 기본이자 근간으로 삼는 휴먼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수원시정의 핵심인 셈이다. 그리고 정조가 200여년 전 이룩하고자 했던 수원이 바로 인간 중심의 휴먼도시가 아니었는가 한다.

 

지금 수원에서 만들어가는 인문학도시가 ‘형평의 인문학’이었으면 한다. 즉, 인문학적 수혜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향한 인문학이길 바란다. 흔히 사회적 약자이자 도시 비공식 부분에 해당하는 행상, 노점상, 막일꾼 그리고 노숙인에게 이르기까지 향유의 기회가 닿기를 기대한다. 이들의 그늘짐과 주름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희망의 인문학이길 바란다. 두 번째 ‘나눔의 인문학’이었으면 한다. 지식 전달과 확산은 물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인문학이길 기대한다. 세 번째 ‘갈등 해소의 인문학’이었으면 한다. 산업화로 도시가 발달하고 사회가 성장하면서 사람 간 갈등, 단체 간 갈등, 민과 관의 갈등은 심화돼가고 있다. 인문학을 통해 이런 일련의 사회문제들을 치유함으로써 이상적인 도시공동체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상적인 도시는 규범적 윤리적 의식을 지닌 사회구성원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도시 형성을 통해 정조가 이루지 못한 이상도시 수원의 꿈을 꿔 본다. ‘사람 중심 도시 수원은 수원시민이 만듭니다.’  장보웅 수원시 기획예산과 행정전략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