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났다. 명절은 가족끼리 모이는 즐거움의 장이지만, 주부들에게는 명절 공포증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 고생의 장이기도 하다. 그 중 뭐니 뭐니 해도 음식 해 올리는 고생이 으뜸이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의 음식은 참으로 문제가 많은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리 양념도 많고 다듬고 버무리고, 손이 많이 가는지, 주부들은 하루 세 끼 만들고 치우는 데 하루가 다 가버린다. 왜 이럴까? 나는 이것을 우리 음식이 먹는 사람 위주로 차려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주부가 고기나 생선에다 양념을 얹어 오븐에 넣으면 요리가 끝나게 되어 있다. 요리가 다 익으면 오븐에서 꺼낸 다음 식탁에 내놓기만 하면 된다. 먹는 사람들은 각자 접시에 덜어서 칼과 포크로 잘라 먹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고기나 야채 등 모든 재료를 먹기 좋게, 사람 입에 들어갈 크기로 다 잘라 놓아야 한다. 먹는 사람은 젓가락 들고 집어서, 아니면 숟가락으로 떠서 입 안에 넣는 일만 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칼과 포크 대신 젓가락과 숟가락을 이용하는 것이다.
만들기 어렵고 먹기 편했던 한식
우리는 보통 서양인들이 칼과 포크를 이용하고 동양인들이 수저를 이용하는 이유를 서양인의 주식이 고기이고 동양인의 주식이 쌀이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서양인들이 고기뿐 아니라 치즈나 심지어 야채샐러드까지도 칼로 썰어 포크로 찍어 먹는 모습을 보면 분명 그러하다. 우리도 고기를 먹지만 먹는 사람이 편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수저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의 요리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성가신 작업이지만,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편한 음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주부들이 명절 때마다 부엌에서 고생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된 것이다.
또한 우리의 음식은 휴대의 간편성이 너무 없다. 해외여행을 가면, 한국인은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김치 생각, 된장 생각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관광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원래 우리의 식사 패턴이 국이나 찌개 없이는 한 끼도 못 먹게 되어 있지 않은가? 마른 반찬과 비교적 역사가 짧은 김밥과 사발면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 음식 가운데 휴대가 가능한 것이 별로 없다. 한민족이 역사상 단 한 번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평화민족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내 생각엔 우리의 음식문화가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밥하고 국과 찌개를 끓여 먹으면서 언제 전쟁을 하고 남의 나라를 정복하러 다니겠는가?
이제는 글로벌 ‘한식 열풍’
지금까지 언급한 것만 보면, 우리의 음식문화는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다. 요즘은 슈퍼에 가보면 뜨거운 물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재료나 완제품을 점점 더 많이 판다. 이는 만드는 사람의 수고를 크게 요구하는 한식의 문제점과 휴대불편성을 크게 개선해 주고 있다. 이제 먹는 사람의 맛과 편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한식의 장점만이 남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의 음식이 활개를 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 크게 일어나고 있는 한식 한류도 여기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한국 요리는 알려지질 않아서 그렇지 일단 우리 음식을 맛본 외국인들은 그 맛과 다양함에 놀란다. 김치는 이미 어느 정도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고 얼마 전엔 식혜가 외국에 수출되어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다. 문제는 상품화 기술과 정책이다. 김치와 식혜 등의 상품화에서 일본에게 한 때 선수를 빼앗긴 것에 우리는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새해에는 우리의 음식문화에 긍지를 가지고 이를 세계화해 나가는 일에 큰 힘을 기울이고 좋은 성과를 얻어내도록 해야 하겠다. 박만규 아주대학교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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