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살아야 그 도시가 산다

예술의 본질은 신비, 비밀, 그 자체다. 예술은 어느 분야에서도 존재한다. 아파트를 짓는 것도, 휴대폰이나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이제는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 예술은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예술은 아직도 시민들에게는 낯선듯하다. 어릴 적 잘못된 예술교육 탓이다. 주입하고 다그치는 음악, 미술 등 예술교육은 감성을 키우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어지게 했다.

 

예술은 혼이고 정체성이다. 역사이자 또 다른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이라는 것은 예술가의 인간적 향취이고 인간으로서의 풍모이다. 예술작품은 바로 그 사람이다. 예술의 향수자인 시민들이 예술안목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예술의 생산자인 예술인들의 몫이다. 진지하게 음악을 들으며 삶과 예술을 말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관객은 누구나 평등하다.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사회적 지위나 재산여부를 막론하고 모두 평등해진다. 예술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일부계층만의 예술이 아니다. 발레 한 편을 봤다고 곧장 예술적 감성이 생기는 게 아니다. 시민들이 생활 속에서 예술을 느끼도록 해서 훌륭한 예술매개자가 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공연장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이뤄진다.

 

최근 깊은 불황에 빠진 공연예술계가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콘서트와 드라마를, 춤과 연극을, 강연과 쇼를 크로스오버(Crossover)하고 있다. 서로 장르의 콘텐츠를 결합한 색다른 무대가 잇따르고 있다. 노래와 밴드가 직접 참여한 연극과 영상, 그리고 퍼포먼스가 함께 한다. 음악만 나열하는 콘서트 말고 관객들이 처음 접하는 낯선 공연을 펼쳐야 한다. 가수나 밴드가 무대에 올라 히트곡을 주르륵 불러 젖히는 콘서트는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늘 새로워야 한다. 어제 본 듯한 작품은 예술이 아니다. 그건 예능일 뿐이다. 지식과 유희가 결합한 ‘강연콘서트’도 인기다. 강의와 노래, 토크쇼가 교차하는 가운데 행위예술가가 댄스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유명인사의 이야기와 노래가 이어지는 콘서트다. 비빔밥 콘서트다. 전시나 공연예술이 ‘시민들의 이끌림’을 받으려면 끊임없이 변신해야 한다.

 

노산 이은상은 ‘자기가 태어나서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 예술을 모르고서 세계사나 서양사를 논하지 말라’고 했다. 지역문화는 지역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통해 선택하고 자기화한 가치관이고 생명력이다. 그러기에 지역민들에게는 지역문화와 예술이야말로 정서적 고향과도 같다. 정체성확립이 중요하다.

 

수부도시, 수원은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독자적인 예술과 문화영역을 확보하기가 녹록하지 않다. 예술단체의 기능과 역할이 막중하다. 우리나라 예술단체는 대체로 공공영역의 의존에 의해 성장해 왔다. 공공영역으로부터 일정한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원이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곤란하다. 자생력 강화가 주요한 과제다.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예술은 창작이다. 그 자체가 생동적이다. 고착된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가치는 단순히 기예나 경력의 화려함으로 포장될 수 없다. 예술가는 오로지 작품과 예술적 가치에 따라서 대접을 받는다. 지역예술은 그 도시를 가꾸는 바탕이다. 거기에 꽃씨를 뿌려서 북을 돋워서 튼실한 싹이 나오게 해야 한다. 예술은 유기적 인과관계의 집적물(集積物)이다. 뿌리지 않은 씨앗은 결코 나지 않는다. 지역예술을 살리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  김훈동 수원예총 회장·본보 독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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