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힘겨운 쪽방촌 노인들
“명절이 오면 뭐해? 혼자 방구석이나 지키고 있을 걸. 명절이 오는 게 더 겁나.”
18일 오전 11시께 인천 중구 인현동 쪽방촌.
한평 남짓한 방 한켠에서 전기장판 코드를 꼽던 김명식 할아버지(76)는 “몸이라도 움직일 때 조금이라도 벌어야 할텐데, 요즘은 써주는 곳이 없으니 한푼이 아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입김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방안 공기는 냉랭하고 바닥은 얼음장 그 자체였다.
김 할아버지는 선풍기 모양의 작은 온열기라도 켜보려고 이리저리 만지작 거렸지만 고장이 났는지 열기가 쉽사리 올라 오지 않는다.
아침에 마시기 위해 내놨던 물은 어느새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김 할아버지가 인현동 쪽방촌에서 산 지 벌써 50년이 흘렀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고단하긴 마찬가지.
김 할아버지가 한달 동안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기초노령연금으로 나오는 9만원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신문지나 파지 따위를 주워 내다판 몇푼 정도.
연락이 거의 닿지 않지만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에서도 제외됐다.
지난해 겨울에는 희망근로사업에라도 참가, 난방비에 보탰지만 올해부터는 희망근로사업도 모두 중단돼 일자리 찾기가 더 힘들어졌다.
연금 몇푼 받아봐야 전기료나 수도세 등을 내고 나면 끼니는 라면으로 떼우기 일쑤다.
만석동 속칭 ‘아카사키’촌에 사는 이경자 할머니(73) 사정도 비슷하다.
자녀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자도 제외
얼음장 바닥에 전기장판 깔고 겨울나기
이 할머니는 난방비에라도 보태려고 만석동 괭이부리말 쪽방상담소 자활사업장에서 부업을 하고 있지만 샤프펜실에 뚜껑을 끼우고 이 할머니가 받는 돈은 고작 1원, 하루종일 손을 바쁘게 움직여도 한달 동안 10만원도 벌기 힘들다.
“난방비 나오는 거 걱정돼 마음 놓고 불도 못 떼. 그래도 이렇게 소일거리 할 게 있다는 게 다행이지.”
올해는 그나마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난방비 5만원씩, 구가 연탄 등을 지원해줘 한 시름 덜었지만 때만 되면 조금씩 이어지던 도움의 손길들은 이제 더 이상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김의회 괭이부리말 쪽방상담소 상담원(43)은 “쪽방촌 어르신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무래도 난방비”라며 “기관들의 관심이 높아져서 다행이긴 하지만 기름값은 오르고 어르신들이 할 만한 소일거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어서 쪽방촌 어르신들의 겨울나기는 해가 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kmk@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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