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예술·신학 등 넘나들어 우리가 당면한 문제 해법 제안
식수마저 부족한 한 나라의 사람이 서구를 방문했다가 수도꼭지에서 물이 시원하게 쏟아지는 것을 보고 경탄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펑펑 나오는 것으로 생각한 것. 급기야 그는 여러 개의 수도꼭지를 사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벽에 박고 틀었지만 물이 나오지 않자 크게 실망했다.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휴머니스트 刊)’를 펴낸 철학자 김용규씨가 지은이의 말을 통해 어떤 것에 대한 피상적 이해가 가진 위험을 풍자한 우스갯소리를 소개한 것이다.
서양문명의 근간인 ‘신(神)’에 대한 이해 없이 서양의 예술과 철학, 역사 등을 ‘알았다 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이 책의 집필 의도를 밝힌 것이다.
저자는 ‘서양문명에서 기독교는 무엇이며 그것의 핵심인 신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아야 우리가 당면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 실마리 찾기에 나섰다.
3년 여간의 연구 및 집필 결과물인 책은 우선 신과 인간의 관계(1부)를 살펴보고 존재와 존재물의 속성(2부), 창조주와 피조물의 의미(3부), 신의 섭리와 인간의 자기헌신(4부), 신의 유일성과 인간의 연대성(5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책에는 신과 관련된 서양 철학과 신학의 진수가 담겼으며, 이를 문학과 미술 장르의 예술작품까지 활용해 설명한 부분에서는 저자의 폭넓은 지식 스펙트럼이 엿보인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저자는 9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통해 플라톤, 아퀴나스, 하이젠베르크 등 고전부터 근현대 철학까지를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또 괴테·셰익스피어·미켈란젤로·스티븐 호킹 등 문학과 미술, 자연과학까지 신과 직간접적 관계를 맺은 다양한 부문을 활용해 풍부한 담론을 이끌어낸다.
특히 독자에게 말하듯이 편안한 문체가 눈길을 끄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성직자들이 설교할 때 즐겨 사용하던 디아트리베(diatribe)라는 수사법을 활용했다”고 설명한다. 디아트리베는 ‘기분풀이’ 또는 ‘환담’이라는 뜻으로 철학적 변론이나 종교적 사상이라도 전문용어를 사용해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대신에 일상용어로 설명하면서 독자나 청중과 담화를 나누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법.
서양문명과 신, 서구의 철학과 예술 등 관심은 있지만 어렵게 여겨 선뜻 관련 서적을 선택하지 못했던 많은 독자들에게 이를 쉬우면서도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저자의 필력이 돋보인다. 값 3만7천원
류설아기자 rsa119@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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