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광연세(恩光衍世)-추사 김정희도 칭송한 미덕을 스크린에 녹이다

KBS 드라마 ‘거상 김만덕’의 촬영 현장속으로

매주 토·일요일 밤 9시40분부터 KBS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거상(巨商) 김만덕’은 국민 여배우 이미연의 명성황후 이후 8년만의 사극 복귀작으로 방영전부터 화제가 됐다.

 

드라마는 조선시대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했던 시절, 관기라는 신분의 굴레를 벗고 큰 부를 모아 조선팔도의 관심을 집중시킨 실존인물 ‘김만덕’의 일생을 통해 조선판 여성CEO를 조망, 기존 사극에 신선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 3월6일, 어린시절 만덕의 파란만장한 삶을 맛보기로 보여준 드라마는 4월3일 9회 방송분부터 본격적으로 이미연이 등장했다.

서른아홉의 나이에도 불구, 뽀얀 피부와 생기있는 활기로 20대의 파란만장한 역경을 헤쳐가는 만덕으로 분한 이미연의 등장은 16%의 시청률를 기록했다.

 

제주도가 배경인 드라마는 야외촬영을 제외하고는 많은 부분을 KBS수원드라마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4월6일 오전, KBS수원드라마센터 TS-21 섹터는 분주했다.

 

봄바랑 살랑거리는 바깥공기와는 완전히 차단된 채 숨소리 하나까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세팅돼 있는 촬영장 810㎡(250평)엔 긴장감과 한기마저 느껴졌다.

 

이날 드라마 촬영분은 4월9일~10일 양일간 방영될 내용으로, 만덕과 대결구도를 본격화한 문선(박솔미)의 악행이 서서히 드러나는 장면. 만덕을 소중한 보금자리인 동문객주에서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게 만들기 위한 계략을 꾸미고, 강유지(하석진) 등 만덕을 사랑하는 남자 캐릭터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고자 미모대결을 펼치는 장면을 촬영했다.

 

작업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다. 칸막이가 세워진 10㎡내의 세트장을 이리 저리 옮겨가며 오후 8시까지 19여씬을 소화해야하는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이었다.

 

오전 11시 50분. 연신 같은 단어를 반복하며 대본을 외우며 FD의 지시에 따라 연기에 몰입하고 있는 문선(박솔미)과 동문객주의 행수 김판술(이병욱), 서문객주의 사기꾼 김서주(정수영), 강유지(하석진) 등 메인 배우들이 연달아 호흡을 맞춰본다. 평상복 차림으로 동선과 대사를 맞추고 담당 FD와 사소한 눈빛까지 모두 교환하고 나서야 1차 리허설이 끝났다.

 

잠시 휴식을 취한 스탭들이 모처럼 밝게 웃으며 촬영의 긴장감을 털어낸다.

 

그 사이 배우들은 분장과 의상을 완벽하게 갖추고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15대의 조명에서 각기 다른 불빛을 밝히자 칠흙같던 세트장이 금세 환해졌다.

 

세트장 좌, 우, 가운데에 떡 하니 배치된 3대의 메인 스튜디오카메라엔 각각 3명의 카메라 감독과 음향 감독, 조명 감독, 소품, 의상, 분장, 미용 등 20여명의 스탭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날 촬영을 총 지휘하는 마태희 FD의 손 사인과 함께 배우들은 금세 18세기 조선으로 빨려들어갔다.

 

“허허 참, 이보시오 서문객주 마님! 내가 이깟 재물에 청춘을 바친 동문객주를 배실할 듯 싶소!”(김판술-이병욱)

“난 두번 권하지 않소이다.…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골라 둥지를 트는 법이네”(문선-박솔미) “캇!” 긴장감 흐르며 대사를 치고 받던 배우들이 움찔한다.

 

김판술과 문선의 대화내용이 매끄럽지 않고, 일어서 봉투를 챙기는 김판술의 동작이 어색해 퇴짜를 맞은 것. 다섯 차례 같은 동작을 반복해 겨우 OK사인을 받아낸 배우들은 또 다시 여러 컷의 촬영을 마친 후에야  22 SECTER로 세트장을 옮겼다.

 

그 곳은 조선시대 최고의 관기들이 모인다는 관아 교방으로 연출됐다.

 

원앙과 모란에서조차도 색기를 뿜어내는 듯한 다섯 폭 병풍에 금술과 빨강으로 꾸며진 보료, 화려한 옥잠과 떨잠, 비녀를 보관하는 나전칠기함에 경대, 분대까지…. 그야말로 교방 분위기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세트장엔 꽃보다 더 화려한 묘향(김선경)이 단장을 마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허공을 싸늘하게 응시한다. 이어 영천댁(박순천), 촉새어멈(조양자), 홀쭉이(정주희)가 대사를 받아친다.

 

“영 넋 놩 시민 어떵허느니? 빨리 안 나오민 끌어내켄 성환디….(촉새어멈) …“나가! 다 나가란 말야!!“(묘향)…“아이고, 저놈의 성질머린 곧 죽어도 꽥인게!”(영천댁).

 

제주방언을 유창하게 구사해야 하는 어려운 장면인데도 단 한번의 NG없이 말끔하게 OK사인이 떨어졌다.

 

역시 중견 배우들의 노련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드라마의 시대 구성상 옛말이 많고 대사 분량이 많아 몇 번이나 NG가 나는 경우도 허다한 촬영현장. 그러나 배우들이 연출자들에게 대사를 더 재미있게 바꿔봤다며 시연을 해보는 등 촬영장 분위기는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었다.

 

이날 촬영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는 기자에게 촬영내용이 담긴 대본 2부를 건넨 마태희 FD는 “앞으로 ‘전복’을 두고 만덕과 문선의 한판 대결이 벌어질 겁니다. 만덕이 역경을 딛고 동문객주의 행수자리까지 오르는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전개될 예정”이라고 귀띔하며 “20대를 연기하는 이미연씨의 연기력과 중견 배우들의 노련함이 묻어나는 명품 드라마를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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