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개 점포서 풍기는 유럽천 노천카페의 매력 ‘물씬’
선선한 미풍, 간간히 실려오는 구슬픈 재즈선율에 담긴 삶과 사랑이야기가 카페를 밝힌 노란 등(燈)처럼 테라스 너머 사람들의 대화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밤의 테라스’속 풍경이다.
매일 이런 진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도내에도 있다.
바로 2004년 성남시 분당구 정자1동 일대에 동양파라곤과 성원상떼빌리젠시 등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 일대 500m 양쪽 도로변에 생성된 ‘분당 카페거리’가 그 곳.
마치 유럽의 노천카페 골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30여개의 카페들서 풍겨오는 커피냄새와 고소한 파스타 향은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 곳을 찾아 가는 여정은 3월12일 오전 수원서 시작됐다. 아침에 반짝 비추던 햇살은 온데 간데 없이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돌풍을 차창 너머로 느끼며 용인·수지 방면으로 꺾어 들어가 분당-수서간 고속화도로를 타고 40여분을 달려 정자역 환승주차장에 도착했다.
정자역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카페촌은 소위 부촌(富村)으로 불린다. 유모차를 끌고 한 손에 드롭커피를 쥔 미시족들이 선글라스 너머로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를 못 마땅하게 쳐다보는 것이 마치 헐리웃 스타를 쫓는 파파라치라도 된 것 같았다.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언 몸을 녹일 커피향이 그리워 찾은 ‘커피방아’선 직접 원두를 갈아(로스팅) 고객들에게 수제 드롭커피를 서비스한다. 그 곳에선 세계 각국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 깔끔하면서도 부드러운 목넘김이 일품인 에피오피아산 커피는 인기만점이다.
커피를 맛봤다면 이젠 거리를 둘러 보자. 호화스럽게 치장하지 않아도 은근한 멋이 풍겨나오는 숍들엔 특징이 있다.
전부 바람을 막아주는 비닐로 싸여진 테라스와 데크가 깔려있다는 점. 관공서에선 공유지에 설치한 불법 건축물이라지만, 기자의 눈엔 연인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오후를 즐기는 주부들과 파스타맛에 심취한 젊은이들의 낭만의 장소로 비춰졌다.
다만 불편한 점을 꼬집는다면 조금 춥다는 것. 숍에선 추위를 막기 위해 페치카와 무릎담요를 구비해 놓고 있다. 그래도 서로의 온기가 절실해 더욱 은밀한 장소가 되는 점도 테라스의 묘미다.
카페촌 터줏대감으로 제일 먼저 점포를 연 ‘일 마노(IL MANO)’의 주인 김승준씨는 “2005년 처음 카페를 열었을 때 구청과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며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못 쫓아가는 건축양식이 아쉬워 숍을 통해 새로운 테라스 문화를 정착시켜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우게살 크림소스 스파게티와 이탈리아, 칠레산 고급 와인을 주 메뉴로 시작한 일 마노의 인기덕에 이 곳 카페촌은 한 달에 10여건 이상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지로 로케이션되고, 유명 연예인들이 속속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하얀 철제 울타리와 장미꽃으로 테라스를 장식한 카페 ‘마리’엔 ‘어머님들 모임, 아늑한 마리에서 커피와 케이크로 즐겨보세요’라고 쓴 메모판이 눈에 띈다. 또한 ‘하루에’, ‘아루’ 등 강남에서 이미 유명세를 탄 카페들이 상륙해 있다.
물 한 잔도 와인글라스에 따라줄 정도로 서비스가 고급스럽다. 여기에 매일 300여개가 팔려나간다는 컵케이크 전문점 ‘굿오브닝’, 수제 아이스크림에 초콜릿·딸기 시럽을 즉석에서 버무려 와플에 싸 먹는 ‘콜드스톤 크리머리’ 등 이색숍들이 즐비하다.
바쁜 시간을 짬내 만든 반나절 휴식, 선물처럼 주어진 예상치 못한 하루의 휴가, 정신없이 달려왔기에 스스로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주고 싶은 날이 있다면 분당 정자동 카페거리를 찾아가면 진정한 쉼(休)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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