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9일 속 전설 토대로 12가지 에피소드 엮어
1951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자와 감독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 가 하면, 2000년 한국 인천 M대학교 인문학도의 리포트가 등장하고, 19세기 말 원작자의 할머니 이야기로 거꾸로 들어갔다가, 2005년 MBC 뉴스데스크나 2006년 네이버 블로그에 컬트소녀가 쓴 영화에세이가 등장한다.
일견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이야기라는 게 어떻게 필요에 따라 변형되고 이용당하며 새로운 의미로까지 거듭나는 것인지 흥미롭게 반추하게 되는 책 ‘퀴르발 남작의 성’(문학과지성사 刊)이 출간됐다.
책의 저자는 지난 2007년 제7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놀라운 신인’으로 주목받았던 최제훈. 그는 등단작인 ‘퀴르발’을 비롯해 지난 3년간 발표했던 8편의 단편 소설들을 모아 책 한권에 담았다.
기존 서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독창적인 상상력을 선보인 저자는 소설집에서 속도감 넘치는 문장, 허를 찌르는 위트로 참신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표제작인 ‘퀴르발’은 최제훈 소설 특유의 구조적 완성도와 재기 발랄함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젊음과 생명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의 인육을 먹는 퀴르발 남작 이야기가 중심이다. 허구의 구전 설화 ‘퀴르발 남작 전설’을 토대로 했다. 전설을 소재로 구성된 총 12개의 에피소드들은 한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 공간을 초월해 각기 다른 시간대의 6월9일에 있었던 일들이다.
책은 퀴르발 남작이라는 인물과 그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변형되어 다른 시공간의 사람들에게 전달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설화에서 소설, 영화는 물론 각종 블로그와 보고서 등 각종 텍스트에 따라 전달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이야기가 재해석되는 과정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서간문 형태의 소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도 흥미롭다. 그는 이 작품에서 명탐정 셜록 홈즈가 코넌 도일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을 특유의 상상력에 근거해 재구성한다. 메리 셰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분석하고 재해석한 소설 ‘괴물을 위한 변명’도 독특하다. 값 1만1천원
윤철원기자 ycw@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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