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임양은 본사주필 yelim@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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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주필

 

공자도 부자 간 대화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공자의 문하생 진항이 스승은 아들 백어에게 어떻게 교육하는 지 궁금해 물었다. 백어의 대답은 이랬다. “아버지를 집뜰에서 만나 지나가는 데 불러 시경을 읽어야 인정과 도리를 안다고 말씀하셔서 읽게 됐다”는 것이다. 공자 같은 분도 아들과의 대화가 뜰에서나 있었던 것을 가리켜 후세인들은 ‘정훈’(庭訓)이란 고사로 전한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1993년 짐 쉐러단 감독 작품으로 1970년에 있었던 실화다. 아일랜드의 한 무직 청년은 아버지를 무능히 여겨 대화가 있을 수 없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온 가족이 런던 폭파 테러범 지원 조직으로, 억울하게 옥고를 치루며 누명을 벗는 법정투쟁 과정에서 보인 놀라운 용기와 인내를 보고 새삼 존경을 금치 못하게 된다.

 

돌아보면 필자도 아버지 생전에 대화가 많지 않았다. 아니, 대화를 피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못난 아들을 위해 남몰래 하셨던 이런 일, 저런 일들이 기억되는 데 나는 아버지를 위해 해드린 게 아무 것도 없어 부끄럽다. 이런 잘못을 경험삼아 내 아들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했으나 역시 뜻대로 되지 못했다.

 

인천 신송고 ‘부자캠프’

아들이 아버지의 발을 씻어드렸다. 인천 신송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지난달 27일부터 이튿날 28일까지 학교 대강당에서 가진 ‘아빠와 함께하는 1박2일 캠프’ 프로그램에서다. 이에 참가한 40여쌍의 아버지와 아들은 새로운 부자의 정을 일궜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바빠 그동안 못다한 서로의 얘기를 밤새워 도란 도란 주고받은 대화는, 말이 없어 응어리 졌던 맘속 앙금을 걷어냈다. 이밖의 다채로운 프로그램 또한 부자의 딱딱한 벽을 허물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뭣을 생각하는 가를 이해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거듭 확인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시일이 지나면 캠프에서 느낀 정서 역시 차츰 무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라도 뿌린 남는다. 흑판 강의로 하는 인성교육도 좋지만 캠프 행사는 체험적 인성교육이다. 이런 체험적 인성교육이 많은 학교에서 다양하게 개발돼 확대 되면 좋겠다.

 

가족 간에 소중하지 않은 사이는 없다. 부부는 말할 것 없고, 모자나 모녀간 사이도 중요하고, 형제자매나 남매간 사이도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부자 사이를 말하는 것은 남성 우월주의가 아니다. 남성 우월주의란 말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가족 형성의 계보가 부계, 즉 남성 중심으로 된 인류사회의 보편적 생활 양상 때문이다.

 

대화를 더 많이 가져야

아버지와 아들을 둔 말에 ‘아버지는 아들의 덕을 말하지 않고, 아들은 아버지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父不言子之德 子不談父之過)는 것은 명심보감의 말이다. 이에 비해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얼마후엔 아버지를 심판한다. 아버질 용서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드문 일이다’라는 것은 19세기 영국의 탐미파 거장 시인 와일드의 말이다. 명심보감 구절은 동양적 사상이고 와일드의 말은 서구적 사상이다.

 

주요한 것은 현대사회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전통적 인식에서 서구적 관념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들이 장가를 들지 않거나 장가를 들어 아일 갖지 않아도, 아버지가 뭐라고 하는 것은 잔소리로 치부한다. 가령 손주를 기다리는 것은 아들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의 권리인데도 아들은 아버지가 할아버지 될 권리를 잘 인정치 않는다. 부자관계만도 아니다. 고부 간 역시 바뀌는 추세로, 예전 같은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가 아니다.

 

그러나 세태가 어떻게 바뀌어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 은 인성이 근본이다. 부자간의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은 어느 시대나 같고, 이는 아버지의 군림과 세대차이 때문이지만 이러므로 더 해야 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말같지 않은 남들 말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하물며 아버지와 아들 간의 대화에 있어서야, 단소리보다 쓴소리의 소통이 가정의 활력소다. 가족간의 대화가 중요한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의 소통은 더욱 중요하다. 이같은 소통 가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 또한 건강하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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