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지 않을 경우 사업계약 해지할 수도"…삼성물산 "용산사업 좌지우지 생각 잘못"
총 사업비 31조원으로 단군이래 최대 개발사업인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파국에 파국을 거듭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최대주주인 코레일은 19일 오전 서울 광화문 드림허브금융투자회사(PFV)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대 시공사이자 건설투자자인 삼성물산에 대해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AMC:자산관리위탁사)의 경영에서 물러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는 코레일과 삼성물산 등 30개 투자자들이 1조원을 투자해 만든 페이퍼컴퍼니인 드림허브금융투자회사를 대신해 사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업체로 삼성물산 출신 인사가 대표와 개발본부장, 엔지니어링 본부장 등 요직을 맡고 있다.
코레일 김홍성 대변인은 "삼성물산이 '지분 6.4%에 불과한 소액 출자자'라며 책임을 기피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업의 핵심 주관사"라며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의 경영진은 물론 드림허브의 이사 10명 가운데 3명의 몫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게다가 삼성물산은 650억원 정도를 투자해 용산철도차량정비창 이전공사 등 4,000억원의 공사수주를 독식하는 등 이익은 완벽하게 챙기고 있다"며 "그러나 책임져야 하는 토지대금의 조달업무는 등한시하는 등 사업 주관사로의 역할은 고사하고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은 "이에 따라 지난 13일 용산역세권개발 주식회사의 경영에서 물러날 것을 삼성물산에 통보했으나 아직까지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코레일은 "만약 삼성물산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사업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다"며 "반대로 삼성물산이 경영에서 물러날 경우 새로운 건설사를 투자자로 받아야 하는만큼 20일로 다가온 사업계약해지는 일단 유보한다"고 밝혔다.
◈ 삼성물산 "코레일 생각 잘못됐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용산사업을 삼성이 좌지우지한다는 코레일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 이종섭 홍보부장은 19일 "용산사업이 삼성물산 때문에 잘못되고 있다는 코레일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부장은 그러나 "삼성물산은 (경영에서 물러나라는)코레일의 제안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삼성물산이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장은 "현재 문제는 사업성"이라며 "최근 부동산경기 침체로 사업성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금융권도 자금제공을 꺼려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지 삼성물산이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 용산국제업무지구사업, 어떻게 될까?
최대주주인 코레일과 건설투자자 가운데 최대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물산이 이처럼 충돌하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사업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일단 용산사업의 미래는 크게 2가지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코레일의 제안대로 삼성물산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다른 건설투자자를 물색하는 경우와 삼성물산이 그대로 눌러 앉는 경우이다.
첫번째 경우는 코레일과 삼성물산 사이의 충돌이 해소되면서 사업이 외형적으로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다른 건설투자자를 물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물산을 대신할만한 건설사는 현실적으로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정도를 상정할 수 있지만 두 회사 모두 매각을 앞두고 있다. 채권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매각 건설사가 대규모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삼성물산이 코레일의 요구를 거부하고 경영권을 유지하는 두번째 경우는 사태가 험악해진다. 코레일은 주주총회를 통해 삼성물산의 경영진을 물갈이한다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경영진 교체를 위해서는 드림허브 이사 10명 가운데 4/5인 8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삼성측 이사가 3명인만큼 이사회 대신 주주총회를 열어 안건처리를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만약 삼성물산이 경영권을 고집할 경우 코레일은 사업계약을 해지하거나 드림허브의 디폴트를 방관하겠다는 입장이다. 드림허브는 당장 다음달 17일이면 ABS 이자 128억원을 납입해야 하지만 뾰족한 자금대책은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대안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 정부나 서울시가 민간사업자를 대신해 공공개발을 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공공개발의 주체가 될만한 LH나 SH 역시 기존 개발사업마저 취소하고 있는 마당에 신규사업에 뛰어들기는 힘들다는 관측이다.
◈ 주민들은 '부글부글'
또 하나의 변수는 용산사업 부지인 서부이촌동 주민들이다. 사업이 좌초위기를 맞으면서 개발을 찬성하던 쪽이나 반대하던 쪽이나 목소리가 커졌다. 친개발파는 사업좌초에 따른 재산피해를 우려하고 있고 반개발파는 이 참에 용산사업 자체를 취소하거나 서부이촌동과는 분리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개발에 찬성하는 대림아파트 동의자 협의회 최병한 총무는 "개발에 따른 이주에 대비해 은행에서 미리 대출을 받아 주거지를 이전한 사람들이나 상가 세입자들의 피해는 막심하다"며 "사업지체로 인해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서울시 등을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고 밝혔다.
최 총무는 이어 "공공개발 역시 주민들에 대한 보상가를 낮추려는 방법인만큼 반대한다"며 "용적률을 높여 사업성을 높이는 방법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미 서울시 등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최근 한달간 용산사업이 무산위기를 겪으면서 서울행정법원에는 개발구역지정을 취소해달라는 서부이촌동 일대 주민들의 소송 3건이 접수되기도 했다.
◈ 천수답 용산국제업무지구사업
용산개발사업이 살려면 부동산경기가 좋아져야 한다. 적어도 삼성물산의 내심은 그렇다. 용적률이나 지급보증 등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삼성물산은 일단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사업을 유보하거나 자금조달이 쉽도록 단계별로 개발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언제 살아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또 사업유보나 단계별 개발로 방향을 틀 경우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아무리 쥐어짜도 용산개발 사업의 현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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