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猥褻)과 예술(藝術)

시대의 잣대·통념따라 달라져...제작자 도덕적 의식의 차이

지난 85년 미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 문화예술계를 돌아볼 기회가 있어서 한 달여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주로 공연장과 미술관, 박물관 등을 방문했고 저녁에는 거의 매일 각 장르의 공연을 관람했다. 뉴욕에서는 미 국무성 문화담당관의 권유로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오! 칼카타’(Oh! Calcata)를 봤다. 그렇지 않아도 이 뮤지컬이 예술인지 외설인지를 두고 국내 언론을 통해 자주 논란이 있어 궁금하기도 한 참이었다.

 

15년 동안이나 롱런을 하고 90년대 초에 막을 내린 ‘오 칼카타’는 남녀 8명의 연기자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알몸으로 떠들며 춤과 노래로 다소 퇴폐적으로까지 보이는 장면을 연출했다. 단지 벌거벗은 남녀 배우를 생전 처음 보았다는 것과 미국에서는 이러한 나체공연도 가능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도 객석은 만원이었고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어떤가? 작년 말 화제가 됐던 연극 ‘교수와 여제자’와 금년 전반기에 개막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 ‘교수와 여제자’는 40대 대학교수가 젊은 여제자를 통해 성적 장애를 극복한다는 내용으로, 파격적인 성행위와 대사로 30세 이상에게만 입장을 허용한 대학로 연극 최초의 전라연기로 한 공연이다.

 

필자는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겁던 지난 6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관람하게 됐다. 연극은 노골적인 성 표현으로 유죄 판결까지 받은바 있는 현역 유명 대학교수의 소설집 ‘즐거운 사라’를 바탕으로 제작된 연극으로, 대학 축제기간 중에 교정에서 일어난 미스터리한 섹스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성에 대한 거침없는 대사와 선정적인 장면으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한 중년 남성 관객은 주연배우 소속사와 연극 극단에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외설적인 연극을 중단하라고 항의하는가 하면, 연극이 공연되는 날에는 로비로 찾아와 외설적인 연극 공연을 중단하라고 소동을 피우기도 했다.

 

이 두 연극의 공통점은 연출자가 같은 사람이며 시기는 다르지만 같은 극장에서 공연되어,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나 노이즈 마케팅을 펼친다는 논란 속에서 단단히 효과를 보아 대학로 연극 예매율 1위를 고수했다는 점이다.

 

‘외설(猥褻)’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면 ‘남녀간의 난잡하고 부정한 성행위나 또는 다른 사람의 색정을 자극하여 도발 시키거나, 자기의 색정을 외부에 나타내려고 하는 추악한 행위’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술(藝術)’은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등으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이나 그 작품’이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미국 뮤지컬 ‘오! 칼카타’나 우리나라 연극 ‘교수와 여제자’ 그리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예술인가? 외설인가?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인 답으로 찾으려는 데 문제가 있다. 시대의 잣대나 통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감상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의 유명화가 김홍도의 ‘춘화도’나 16세기 이탈리아의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남성 전라조각 ‘다윗상’ 등도 지금은 가치를 인정받는 예술품이 됐다. 이와 같이 과거에는 외설 논란에 시달렸던 작품들이 현재에 와서는 예술로 재평가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의 도덕적인 의식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작가의 뚜렷한 도덕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외설은 도덕적인 의식 없이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 혹은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상품화 하는 것이다.

/한진석  안산문화예술의전당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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