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술

아키라 오제의 ‘명가의 술’은 나츠코라는 23세의 양조장집 딸이 죽은 오빠가 남긴 ‘다츠니시키’라는 환상의 쌀을 부활시켜 일본 최고의 술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 만화이다. 처음에는 오빠의 유지를 따라 무턱대고 곡괭이를 들고 논을 만들어 다츠니시키를 키워 나가는 주인공에게 온갖 어려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주인공은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서 유기농을 추구하는 재배회를 조직하는 등 역경을 헤쳐 나간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빠가 남긴 최고의 술이라는 ‘음양주 NO’의 맛을 재현하는 것. 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점차 인간적으로 성숙해가고 양조장 경영마인드도 쌓아가는 등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간다. 그리고 오빠의 술을 만들겠다는 애초의 목적에서, 점차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자신만의 술인 ‘나츠코’의 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 결과 부분적으로 되살아난 음양주의 느낌은 한마디로 ‘깨끗하다’였다. 그러나 나츠코는 뭔지 모르지만 미진하다며 만족하지 못한다. 그가 애써 얻은 최고 수준의 술은 다양한 미주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힘 있고 따뜻하게 사람 마음에 호소하는 맛을 가진 것이다.

 

과연 최고의 술은 어떠한 맛을 지닐까? 작가는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최고의 술은 탄성이 나오는 술보다는 감동이 오는 술이며 힘이 있으면서도 깔끔하고 질리지 않는 술이라고 한다. 좀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맛이 있으면서도 질리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풍부하고, 달고 맵고 강하면서도 섬세하고, 그리고 그것들이 절묘하게 균형 잡힌 술, 거기에 기술자의 자부심이 넘치는 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주를 만드는 장인들의 정신은 거의 ‘목숨을 건다’는 수준이다. 술을 만드는 과정 과정에는 이들의 혼과 백이 처절하게 서려있다. 오죽하면 이른바 ‘경면’이라고 하여 술 만드는 비법을 터득하면 술 밑에 커다랗고 티 하나 없어 사람 얼굴이 비칠 정도의 투명한 큰 거품이 생긴다고 하였을까?

 

고향을 떠나 근 10여개월을 양조장에서 혼신을 다하는 이들의 애환은 다음과 같은 시로 나타난다. ‘에치고를 나올 땐 눈물이 났지만, 지금은 에치고의 바람도 싫어라.’ 이러한 술의 예술가들에 의해 전쟁 후의 일본주는 어려운 벼농사 감산정책을 뚫고 화려하게 부활하지 않았나 본다. 결국 최고의 술을 빚기 위해서는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제조방법과 장인의 감성과 정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술의 신인 마츠오님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은 자연에게 다 역할을 주신다. 인간이 그것을 모르는 것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술을 빚어가야 할 것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하기 위해서 마신다고 한다. 진리인 것 같다. 마시고 취하지 않은다면 그것은 술이 아니리라. 그러면 술이 취하면 그 감흥의 세계는 어떠할까? 일본 토속주의 선구자 고다마 미츠히사는 산두화라는 글에서 술에 취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여유있게 취하고 보니 온갖 풀이 살랑거리네’ 이처럼 술은 사람들의 애환과 호기, 사랑과 헤어짐, 절제와 후회, 치기와 여유, 폭력과 굴종을 끝없는 술내음으로 그리고 있다.

 

일본인들이 술을 담백하게 음미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마신다고 본다면 중국인들은 관조와 여백, 그리고 자연과 하나 되는 미학적인 음주로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쌓인 한을 표출하고 해소하는 풀이의 마심인 것 같다. 주량은 약하나 술이 주는 감흥을 적잖이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최고의 술맛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미각과 분위기, 그리고 마시는 이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최고의 술맛이 정해지겠지만 결국 최고의 술맛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술이 아닐까? 문득 남도에서 한 지인이 보내온 글이 생각난다. ‘흔들리는 대숲소리를 바라보며 함께 소주 한잔 하지 않으시렵니까?’

 

/김 우 자혜학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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