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27세 J씨는 6개월 전 결혼했고 직장 때문에 피임을 위해 피임약을 복용 중이었다. J씨는 가끔 피임약 복용을 깜빡하곤 했다. 4일전부터 시작된 생리의 양이 평소에 비해 매우 적고 생리통이 있어서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임신 4주였다. 규칙적으로 피임약을 복용하는 경우는 임신이 될 확률이 매우 낮지만 피임약을 깜박하고 빼먹는 경우 임신이 될 가능성이 있다. J씨는 피임약 복용과 1주전 감기로 3일간 감기약을 먹었다고 했다. J씨는 복용한 약 때문에 임신 유지를 망설였다.
시중 판매 감기약·두통약·연고·피임약 등
약물복용으로 인한 기형유발 가능성 낮아
지금은 인공 임신 중절이 근절됐지만 지난 10년간 국내에선 연간 40~50만 건 정도의 임신 중절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중 10% 정도인 5만 건 정도가 초기 약물복용에 대한 불안감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태아의 3~5% 정도에서 기형을 갖게 되는데 이중 5% 정도가 임신 초기 약물 복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약물 복용에 의한 기형 발생은 그다지 높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임산부들은 임신 중 약의 복용에 대해서 과도한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임산부들이 약물에 민감하게 된 것은 탈리도마이드라는 약물 때문인데,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임신부들의 입덧 방지용으로 판매된 약이었다. 동물 실험에서 전혀 부작용이 없었으나 이 약을 복용한 임산부들이 팔다리가 형성되지 않은 기형아를 출산하면서 기형 유발약으로 판매 중지됐다.
이 탈리도마이드에 의한 기형아 출산은 전 세계 46개국에서 1만명이 넘었다.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기형유발물질로 알려져 있으며 의약품의 부작용에 대한 가장 비극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이 가장 강력한 기형유발제인 탈리도마이드의 기형유발률은 30% 정도였다.
상담 받는 산모들 중 가장 흔히 복용하는 약은 감기약, 타이레놀, 연고, 피임약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중에 판매되는 많은 약들은 기형 유발 가능성이 크지 않은 약들이다. 예를 들어 피임약은 미국 식약청(FDA) 분류등급 X로 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 기형을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요즘은 단순하게 분류하는 FDA등급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보고된 기형 발생 사실을 기초로 약물을 상담하고 있다.
복용한 시기도 임신 4주 이전에 복용한 약은 기형의 위험보다는 유산을 일으키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미 임신이 유지되고 있다면 크게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해열진통제로 많이 쓰이는 타이레놀, 아스피린, 콧물, 기침에 쓰이는 항히스타민과 진해거담제 등은 안전하며, 페니실린, 세팔로스포린 계통의 항생제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국소적으로 사용되는 연고, 크림 등도 태아에게 미치는 양이 극히 적으므로 대부분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소화제나 위장강 계통의 약물 또한 대부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실제로 임신 중에도 필요에 따라 처방하는 약물이다. 그렇다고 모든 약제가 임신 중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부과에서 여드름 치료제로 사용되는 비타민A(아이소트레티노이드, 에트레티노이드) 성분은 기형을 일으키는 약제이므로 임신을 계획하고 있거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의료진에게 사실을 알려 약물 선택을 해야 한다.
또한 고혈압, 갑상선 치료제, 간질 및 정신 신경과 질환에 사용되는 약물 중에도 기형유발을 일으키거나 태아 성장과 관련된 약제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질환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여성은 임신 계획이 있거나 임신 가능성이 있을 경우엔 반드시 주치의와 복용할 약물에 대해 상담해야 한다.
/조윤성 성빈센트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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