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인권사상과 인간의 생명권,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최초로 선언함으로써 서구 역사의 새 장을 열었던 버지니아 권리장전(1776)과 프랑스 인권선언(1789) 시대에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는 정조대왕(1776~1800)의 치세가 있었다.
정조 시대는 ‘통합 정치의 탕평 시대’ 또는 ‘조선의 르네상스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정조시대가 다양한 정치세력들을 통합하고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규장각의 설치를 통해 여러 갈래의 학문을 수용하여 문예부흥의 분위기를 형성한 시기라는 특징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정조는 어린 나이에 생부인 사도세자가 비운의 운명을 맞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가는 뼈저린 아픔을 겪어야 했다. 어렵게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 25세. 무소불위한 군왕의 권력으로 선친의 원수들을 갚는 처참한 보복의 피바람을 일으키고도 남을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보복의 악순환을 피하고자 과거의 정적들까지 껴안는 ‘대통합’의 국정을 추구하며 제2의 세종대왕을 꿈꾸는 문화복지군주를 지향하였다. 정조는 자신이 꿈꿔온 이러한 원대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앙시앙레짐(구제도 모순)’을 해결하며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세기적 비전을 담은 새 수도 화성’을 축조 하였다. 안타깝게도 정조 대왕의 ‘수원시대’는 수도 천도를 한 달 앞두고 대왕의 급서로 물거품이 됐다.
뼈에 사무치는 효심이 스며 있는 융릉과 함께 정조가 직접 현지 지도를 한 장안문으로 상징 지어지는 수원은 대왕의 원대한 꿈을 담은 ‘효행의 도읍’이었다. 228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맨 선두에 위치한 수원시가 명실상부한 제1의 명품도시가 될 수 있는 방도는 무엇일까? 정조 대왕에 대한 21세기적 재조명과 ‘대왕의 꿈’ 실현을 위한 프로그램을 특화 정책으로 성공시킨다면, 대한민국 나아가 ‘세계 속의 명품 수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핵심에는 ‘효행 도시 수원’이 있다. 수원의 허파인 광교산과 초등학교 진입로 주변을 여지없이 망가뜨리고 있는 수원천변 여관 숲을 휴식과 요양이 필요한 노인들이 일정 기간 이용할 수 있는 실버타운으로 바꾸어 보자. 시내 일부만 주행하는 화성열차가 수원 천을 끼고 광교산 입구까지 다녀오도록 하자. 천변에는 희망하는 노인들의 자작시나 자화상 또는 조각품들을 작품으로 만들어 오가는 길에 구경하도록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화성열차가 지나다니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겠지만 현재의 교량들을 녹생성장 시대에 맞는 수원의 명물로 재탄생 시켜야 할 것이다. 태양광을 이용해 밤이면 교량들이 오색찬란한 빛으로 거듭나게 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전국 최고의 노인전문 병원하면 ‘수원시립병원’이라는 명성을 얻도록 해야 할 것임은 물론, 병원 근처에는 전국 최고의 노인전문용품타운이 자리 잡도록 할 필요가 있다. 주말이 아니면 한산한 문화예술 공간들이 주중 내내 노인들을 위한 ‘쌍방향 프로그램’들로 분주한 효행의 도시 수원···. 이쯤 되면 수원은 노후에 살고 싶은 최고의 도시, 대한민국 노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효도관광도시가 될 것이다.
7월 10일은 수원시 고유한 행사로 자리를 잡은 정조대왕과 혜경궁 홍씨 역을 뽑는 날이다. 이 행사를 매년 의례적 행사가 아니라 수원시를 전국적 명품도시로 탈바꿈하게 할 수 있는 도약의 장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이 시점에서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나비축제’ 하나로 전국 최고의 명성과 수익을 창출하는 지자체로 거듭난 전남 함평군을 수원시가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홍원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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