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금지는 준비된 것일까

의사가 돈을 위해 낙태를 옹호한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실제로 아이를 가진 산모에 대한 산전 진찰과 출산 비용을 합하면 낙태비용보다 더 많은 이득이 된다.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변화로 고전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정부보다 더 출산율이 올라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에 있는 환자를 직접 만나야 하는 의사는 여러 가지 고뇌를 갖게 된다. 요즘 프로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낙태시술 의사들을 고발해 논란이다. 프로라이프는 ‘생명의 편’이라는 뜻으로 태아생명을 중시한다는 의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존재했던 낙태라는 문제를 논쟁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미성년자나 미혼인 임산부에게 낙태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피임이다. 충분한 피임법을 교육받지도 못하고 임신, 출산, 양육 등에서 발생 할 문제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엄마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미혼모라는 멍에를 쓰고 아이를 기르는 것도, 입양을 시켜 아이와 이별하는 것도 강요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도 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 세 곳을 고발 조치하고 정부가 낙태신고센터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한 후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낙태 관련 상담이 지난해에 비해 대폭 늘었다고 한다. 또 성폭력으로 임신을 해 낙태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해당병원이 증거를 가져오거나 고소장을 가져오라는 요구를 해 피해자들이 더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상처를 치유해야 할 의사마저도 심리적 가해자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환자와 만나고 그들의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듣고도 결국 법의 이름으로 거절해야 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와 의사만 남겨둔 채 모두 외면하고 있다. 남의 이야기를 할 때는 쉬울 수 있지만 나의 딸, 아내의 문제라면 쉽게 비난하거나 강요할 수 없을 것이다.

 

원정출산이 한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제도와 현실은 원정 낙태라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이나 동남아의 다른 나라로 낙태를 위한 관광 상품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불법 임신중절예방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불법낙태 의료기관에 대한 신고 체계를 마련하고, 생명존중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사회 각계각층이 참여한 사회협의체를 구성해 피임 실천율을 높이기 위한 위기임신 콜센터를 상반기에 마련하다고 한다. 규제는 바로 시작하면서 대책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있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방법이다.

 

무분별한 낙태는 분명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미혼모에 대한 인식개선과 사회적인 육아 환경에 대한 개선이 없이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여성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미혼모의 자녀가 행복하게, 편견 없이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또 우리의 인식이 성숙해 져야 한다. 부모의 경제·사회적 이유로 충분한 육아와 교육이 부족한 경우에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배려되어야 한다. 낙태문제는 단순한 의사를 규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규제 전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정말 낙태를 없애면 출산율이 늘어날까? 저출산의 문제는 육아와 교육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기혼자의 낙태도 육아와 교육을 감당할 수 없어 발생하는 2차적인 현상일 뿐이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도 다양하게 허용과 규제로 나뉘는 것을 봐도 낙태를 바라보는 관점에 선과 악은 없는 것 같다. 다만 형편에 맞게 합의를 하고 원칙을 정하는 것일 뿐이다.

 

/류 센 경기도의사회 홍보이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