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래연합’을 기억하는 독자는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1차 가출 시 만든 6개월 단명의 미니 정당이라고 하면 기억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무렵의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은 사사건건 맞서는 박근혜에게 무척이나 시달림을 받았다. 박근혜가 한나라당에 복당한 것은 ‘한국미래연합’ 대표 최고위원을 2002년 5월부터 그해 11월까지 지낸 이듬해다.
지금 박근혜에게 무던히도 애를 먹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이명박이다.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립, 원안을 고수하는 박근혜의 고집은 객관적으로 보아 분당이 우려될 정도다. 하지만 1차 가출에 실패한 그가 또 탈당하는 2차 가출의 실패를 거듭하진 않을 것이다. 친이계의 주류 역시 친박계가 아무리 반당행위를 해도, 제 발로 나가면 또 몰라도 분당의 빌미를 주는 제명 등은 고려치 않을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콩가루 집안이 됐다. 한 지붕 밑 두 집 살림의 한나라당 내분은 마치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키기 직전의 구 민주당 신·구파 싸움을 연상케 한다. 당내 분쟁으로 영일이 없었던 구 민주당은 제2공화국의 집권당이었다. 이를 방불케 하는 한나라당 내분의 주역이 박근혜인 것 또한 아이러니컬하다.
청와대는 박근혜에게 대통령과 언제든 가질 수 있는 회동의 길을 열어놨지만, 지금 같아서는 만난들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 않다.
당내 계보는 어느 나라 정당이든 다 있다. 계보에 따른 이견도 있다. 그러나 계보 간 다툼이 마치 원수 진 것 처럼, 다른 당과의 다툼보다 더 치열한 정당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집권당인 대통령의 시책을 야당보다 앞장서 반기를 들어 공격하는 당내 계보는 더더욱이 없다. 야권이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 국회 통과를 친박계의 한나라당 이탈표를 노려 벼르는 지경이다. 한나라당 내분에 친박계가 이토록 허점을 보였다면 그것은 박근혜의 책임이다. 일찍이 이명박의 포용력 빈곤을 탓했다. 이는 지금 역시 다를바 없지만, 박근혜 또한 더 잘못된 근원적 결함이 심하다.
박근혜는 아직도 이명박을 당내 경선 후보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심리학으로 말하면 ‘악마 효과’의 현상이다. 한 번 밉게 보면 다 밉게 보는 것이다. 이러므로 인해 초래되는 것이 또 ‘외적귀인’ 심리다. 잘 안되는 것은 다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는 경선 때 줄곧 이명박의 본선 필패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대통령으로 대하고 싶지 않은 잠재적 심리에 스스로가 속박돼 있다.
세종시 문제는 이제 국민적 피로감에 싸였다. 한나라당은 세종시 수정을 당론 변경이든 당론 채택이든 간에 빨리 결론을 내려야 할 때다. 만약 의원총회에서 통과가 안 되면 접어 둬야 한다. 대신, 수도분할의 원안도 대통령 임기 동안 이행치 않으면 된다. 이와는 달리 의원총회에서 수정안이 통과되면 국회에서 행동을 같이 하는 것이 정당정치 본연의 자세다.
한데도, 의원총회조차 참석하지 않겠다는 박근혜의 태도는 아주 잘못됐다. 그래도 참석게 하기 위해선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를 의결정족수로 하는 당론 채택보다는, 가급적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을 의결정족수로 하는 당론 변경안으로 처리하는 것이 떳떳하다. 전자는 친이계만으로도 가능하지만, 후자는 친박계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이도 저도 마다한다면 조직인으로서 취할 도리가 아니다. 당론 결정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
그가 보이는 일련의 ‘트러블 메이커’ 양상을 항간에서는 ‘공주병’ 중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믿고 싶진 않으나 알아둬야 할 분명한 사실은 있다. 이명박의 실패가 자신의 차기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서는 큰 오산이다. 이명박이 실패하면 박근혜의 차기도 있을 수 없다. 이명박에게 맞서면 당의 인기는 떨어져도 자신의 지지도는 올라갈 것으로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착각이다. 이런 착각이 수준의 한계라면 차기의 자질이 의심된다는 것이 세간의 평판이다. /임양은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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