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졸업빵’은 중학교에서 더 심해질까?

'입시경쟁 치열로 중학생들의 스트레스 엄청 커져'

최근 중학교 졸업식에서 이뤄지는 이른바, ‘졸업빵’이 사회적 파장을 던지고 있다. 예전에 밀가루나 계란을 던졌다. 물론 당시에도 이런 일탈행위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밀가루,계란 던지기는 ‘애교’에 불과할 정도다. 집단 폭력에 소화기를 뿌리는가 하면 단체로 여학생들의 옷을 벗기는 일이 예삿일 처럼 벌어지고 있다. 왜 ‘졸업빵’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예전과 다르게 중학생들이 ‘졸업빵’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지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 우선, ‘졸업빵’의 의미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졸업빵은 중고등학교에서 졸업식 이후 졸업을 축하하는 기념으로 식초나 밀가루 케첩,계란 등을 투척하는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다. 비슷한 개념으로 ‘생일빵’이라는 말도 있다. ‘생일날 친구들끼리 장난으로 때린다는 뜻이다. 일부 학생들은 생일빵도 졸업빵에 못지않게 심각한 폭력을 행사해 사회적 걱정을 키우고 있다.

 

▶ 요즘 졸업식 뒷풀이를 보면 교복 찢는 건 예사이고 여학생들 옷을 벗겨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지 않나?

 

=지난 9일 제주에서 졸업식 뒷풀이라며 선배들이 여중생들을 강제로 바다에 빠뜨렸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졸업생 7명을 불러내 포구로 끌고가 후배 졸업생들의 속옷을 찢은 뒤 물속에 빠뜨렸다. 가해 학생들은 ‘작년에도 자신들이 당했다’며 일종의 전통행사라고 생각하고 평소 알고지내던 후배들을 바다로 데려가 빠뜨리는 ‘졸업빵’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경찰 3명 입건 예정)

 

경기도 일산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산 모중학교 학생들이 속옷 조차 걸치지 않은 채 ‘막장 뒷풀이’를 한 사진 20장이 인터넷에 유포됐다. 워낙 충격적인 사진들이어서 요즘 중고생 딸아이 자녀를 둔 부모들로써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다. 아마도 ‘내 자식이 아니어서 걱정 없다’라고 말씀할 부모들은 한 분도 안계실 것 같다.

 

▶ 충격적인 ‘졸업빵’은 예전에는 고등학생들이 주로 하던 짓이었는데 요즘에는 주로 중학생들이 하고 있지 않은가?

 

=과거에 ‘밀가루 졸업식’은 고등학생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고등학교 졸업식보다는 중학교 졸업식에서 충격적인 ‘졸업빵’행사가 잦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억압’을 분출하는 시기가 고등학교 단계에서 중학교 단계로 내려왔다고 진단하고 있다.

 

‘졸업빵‘도 학교폭력의 일종인데, 왕따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졸업식 뒷풀이 행사에 대한 표출강도가 중학교에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것.교실 분위기만 봐도 중학교 선생님들이 고등학교 선생님들보다 학생지도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 그렇다면 ‘왕따‘나 ‘졸업빵’과 같은 사회적 일탈현상이 왜 중학교에서 더 심해지고 있나?

 

=경기대 청소년학과 이광호 교수는 “중학교, 중학생이 우리사회에서 ’적응‘과 ’혼란’의 경계선상이 되고 있는 단계가 됐다“라고 진단을 했다. 과거에는 고등학생들이 이 경계선상에 있었지만, 아이들 발달단계가 빨라지고 교육,사회적 환경이 바뀌면서 경계지점이 내려왔다는 것. 더 압축적으로 설명하면, 과거에는 고등학교때 ‘명문대 입학이냐 아니냐‘가 결정됐지만, 요즘에는 중학교 졸업식때 이미 아이들이 ’내 인생의 앞날이 장밋빛인가,아닌가‘를 일찍 판별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느냐,없느냐’가 이때 결정되기 때문에 중학생 아이들의 ‘아픔’과 ‘스트레스’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이다.

 

이광호 교수는 "우리사회가 대입을 비롯한 입시 경쟁에 놓이다 보니까, 아이들이 고등학교 시기보다 중학교 시기에 청소년이 갖고 있는 역설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저항’과 ‘순응’사이에서 많은 갈등과 고뇌를 겪는 시기가 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까 아이들이 성공이나 실패냐를 조기에 결론을 내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사실, 학원이나 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상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시기의 성적이 결정하게 된다고 한다. 외고나 자사고 등 고입 치열해지면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됐는데 사실상 ‘고입이 곧 대입’이 돼버린 것이다. 과거와 달리 초등학교때부터 일찍 선행학습이나 사교육경쟁에 아이들이 흠뻑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사회에서 아이들에 대한 판별을 너무 이른 시기에 아주 단호하게 해버리는 현상이 일반화됐다고 봐야 될 것 같다.

 

특히 경쟁에서 뒤처지는 아이들은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일찍이 자포자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본인들은 별 생각없이 그랬다고 말하겠지만..중학교에서 흡연자가 많이 늘고 있고, 왕따 또한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 사이에 아주 심각해지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이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해결책이 ‘알렉산더의 단칼’처럼 나올 수 있겠나? 무한 경쟁교육을 조정하지 않는 한 현재 나타나고 있는 졸업빵이나 왕따 같은 ‘아픔의 사슬’을 끊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엊그제 교과부가 성적이 좋은 학교에 대해서는 교사 성과급을 더주겠다고 발표했다. 학생지도 잘하는 학교,교사에 성과급을 더 주겠다는 대책은 없었다.

 

그러나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하고도 자신의 인생을 고민했다. 태맥산맥을 쓴 작가 조정래 선생도 자서전인 '황홀한 글감옥'에서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때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인생을 15살에 결정됐다고 판정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