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고 힘 좋은 머슴 어디 없을까

최종식 정치부장 choi@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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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가 많았던 작은집에는 창수라는 머슴이 있었다. 길가던 나그네를 그냥 보내지 못하는 정 많던 아버지는 떠돌이 미혼모를 수양딸로 삼아 작은집 창수와 결혼시켰다. 나에게는 누나와 매형이 동시에 생겼다. 머슴인 매형은 결혼이후에도 작은집에서 일했다. 그는 말이 없었다. 묵묵히 소처럼 일만 할 뿐 명절에 인사를 가도 살가운 말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러나 힘이라면 동네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부역이나 마을 공동일거리가 생기면 어김없이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살던 창수는 곡괭이를 메고 나타나 동네 어른들의 부추킴을 받아가며 일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매형을 두고 ‘창수가 장수야’라며 힘센 창수를 부추겨 주었다. 일 잘하는 창수는 동네에서도 인기였다. 건너 마을에서 소문을 듣고 새경을 더주고 데려가려하면 작은집에서 새경을 좀 더 주고 데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창수는 동네 상가집에 나가 광중(관 넣을 땅을 파는 일)을 하다가 꼬꾸라졌다. 그렇게 힘이 셌던 머슴 창수가 아파서 2~3년동안 누워 있을 때 창수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동네에서 가장 힘이 셌던 창수는 사람들 머리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창수가 동네에서 인정받았던 것은 농사꾼의 힘이였는데 이미 그는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세상 인심이 그랬다. 시름시름 그렇게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귀신이 들렸다고 말했다. 여섯명의 딸과 수양누나에게도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국 수양 누나도 몇년 뒤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

 

갑자기 어린시절 머슴 창수가 떠오른 것은 사상최대의 선거를 준비하는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의 발언 때문이었다.

 

“머슴을 뽑는데 머슴이 병들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뽑는 주인이 어디 있습니까” 뒷 머리를 ‘탁’ 치는 느낌이다. 문득 어린시절 동네 머슴의 상징이었던 창수가 떠오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집 머슴을 뽑으면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정치인을 뽑는 것은 농사꾼 머슴을 뽑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아닐까.

 

동네 어른들이 머슴을 뽑을 때는 우선 일 잘할 수 있는 몸부터 확인했다. 튼튼한 팔과 다리는 물론 속병은 없는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더욱이 잔머리를 써 주인을 속일 머슴인지 성질을 부려 주인에게 위해를 가할 머슴인지도 알아야 한다. 물론 머리도 적당히 있어야 한다. 미련하게 힘만 믿어서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 또 전주인에게 머슴이 문제가 없는지는 알아본 뒤 결정을 한다. 머슴으로 인해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도지사와 시·도교육감 후보 예비등록이 시작되면서 6.2지방선거의 막이 올랐다. 서서히 선거 열기가 오르고 후보자를 비롯 정치인 상당수가 머슴을 자처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주인은 이같은 머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머슴의 임기가 장장 4년인데도 말이다. 4년 농사를 망치면 집안이 망할 수도 있는 긴 시간이다. 솔직히 우리는 그동안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한번 못한 것 같다. 지연과 학연 등에 얽혀 머리가 좋은지 힘은 있는지 아무런 분석이나 확인 없이 머슴을 뽑았다. 또 어쩌면 머슴이 보여준 세치의 혀에 속아서 표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6.2지방선거는 달라야 할 것 같다. 뽑아 놓고 후회하지 말고 꼼꼼히 따져 우리의 머슴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게으름만 피우고 눈속임만 해 온 머슴은 골라 내 쫓아내야한다. 또 주인 모르게 묵묵히 일하며 한해 농사를 풍년으로 만든 머슴이 있다면 새경을 더 주고서라도 다시 뽑아야 한다.

 

/최종식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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