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서울외신기자였던 필자는 한국 정계 관계자의 요청을 받아 요즘 일본에서 집권여당 민주당의 최대 실세로 한창 뜨고 있는 오자와이치로 간사장과의 연결을 주선하고자 실무라인에서 애쓴 적이 있었다. 그때 오자와 측의 냉담했던 반응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그런데 세월 탓인지 아니면 상황 탓인지 모르겠지만 요 근래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그의 접근태도는 나로선 당혹스럽기조차 할 정도이다. 한일간 과거사에 대한 사죄표명이라든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프로 바둑기사 조훈현 9단과의 대국 등 우리 국민들의 눈에는 그가 지한파(知韓派)로 느껴지기에 충분한 행보를 하고 있다.
또 한가지 우리가 그에 대해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 있다. 중국에 대한 매우 우호적이고도 적극적인 접근이다. 불과 얼마 전에 일본 국회의원 142명을 포함하여 6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일본의 집권 민주당이 외견상으로는 친중원미(親中遠美·중국과 친하고 미국과 멀어진다)의 노선을 걷고 있는 듯한 행보다. 그동안의 미국과 일본의 동맹관계에서 볼 때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 오자와 씨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본 새 정권의 지도자들은 왜 이런 전략적인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인들은 주지하다시피 매사에 무척 치밀하고 신중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 그들이 중국 접근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현재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세가 그만큼 유동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경제의 중심축으로 떠올라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서 엄청난 고도성장을 해왔다. 게다가 13억에 이르는 인구를 등에 업고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앞 다투어 중국과의 우호관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반면 미국은 작년 국제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등 체면이 말이 아니다. 미국산 자동차 생산설비는 대부분이 일본 것이어서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사실상 일본에 접수되었으며 심지어 미국 산업 가운데 경쟁력을 가지고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산업은 달러를 찍어 파는 것 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산업 전반에 걸쳐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에 접근하자) 노선으로 국가의 생존전략을 모색하면서 아시아와 서구의 경계선에 머물던 일본이 이제는 탈구입아(脫歐入亞)로의 과감한 노선변경 모험을 감행하려는 데에는 이처럼 동북아 주변정세의 환경변화가 잉태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한국과 중국에 대한 미소전략의 이면에는 이런 흐름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특히 경기도에는 떠오르는 경제 강국 중국과의 연결고리는 없는 것일까. 필자는 평택항을 주목하라고 권하고자 한다. 평택항은 우리나라 어느 항만보다도 중국과 최단거리에 위치해 있는 이점이 있다. 천혜의 항만조건과 뛰어난 입지를 자랑하고 있다. 평택항의 배후에는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등의 초일류기업이 있으며 여기에 딸린 수많은 제조업체들이 수도권 산업 크러스트를 형성하고 있다. 이 일대는 황해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어 물류시스템에서도 환상적인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과거 미국과 일본 의존의 대외무역구조 하에서는 부산과 울산이 번영을 이룩했듯이 중국시대를 맞이하여서는 인천항과 함께 평택항이 그 역할을 떠맡아 우리경제의 새로운 살길과 활로를 여는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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