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걷는다’(신원출판사 刊)
귀신을 속여 밝은 곳으로 유인한 후 양으로 변신한 귀신을 선술집에 판 사람이 결국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다. 약삭 빠른 요즘 사람들의 행태를 비꼬며 좀더 어리석어야 한다고 꾸짖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고은 시인(76)이다. 산문집 ‘오늘도 걷는다’(신원출판사 刊)는 시인의 삶과 문학관, 통일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이 “시에 대해서 종종 말하고 시대의 액면도 말하고 가버린 삶의 잔월도 잠시 붙잡아 둔 것”이라고 표현한 이번 산문집에는 시인이 지나온 삶과 50년을 넘긴 문학 인생, 통일에 대한 염원 등이 진솔하게 담겼다.
시인이 본격적으로 시를 업으로 삼은 것은 1958년 시 ‘폐결핵’을 ‘현대시’에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시에 빠져들게 된 것은 해방 직후 중학교에 입학해 이육사의 시 ‘광야’가 계기였다.
“얼마나 내 가슴이 쿵쾅거렸는지 모른다. 얼마나 나의 마음이 갑작스러운 바람에 일어난 숯불의 크기로 확장되어 걷잡을 수 없었는지 모른다. 시 ‘광야’는 시골두메 마을의 소년에게 일약 세계를 안겨주었다.”(71쪽)
이후 오랜 세월 시와 함께 살아온 시인은 결코 시가 사라지는 일은 없으며 시는 어디에나 있다고 힘줘 말한다.
“왜냐하면, 시는 인간과 인간 언어가 있는 한, 인간의 삶이 죽음과 함께 진행되는 한 그것들의 어떤 국면과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시가 사랑과 자연, 도시의 어떤 풍경을 노래하고 죽음을 노래하는 것과 시가 인간의 실존과 사회를 영영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이런 사실을 깨우쳐준다.” (96~97쪽) 1만원.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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