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있는 연주자들

모 방송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때문에 요즘 ‘엣지’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엣지(edge)있게’란 말은 “최첨단이면서 색다른 패션감각과 연출로 독특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주라”는 뜻이다. 지금과 같은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누구나 혹할 만한 주문이겠지만 무대에 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노출시켜야 하는 연주자들에게는 실로 심각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여성의 경우라면 몰라도 남성 연주자들은 연미복이나 턱시도를 입으면 그만인데 무슨 걱정인가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해외의 유명 연주자들 가운데 파격적인 의상으로 주목을 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을 찾으라면 아무래도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당대 최고의 실력과 더불어 그리스의 조각같이 수려한 용모로 여성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그가 몸에 붙는 검은 색 바지 위에 소매와 품이 넉넉하고 잔주름이 잡힌 셔츠를 입고 무대에 등장하면 마치 신화 속의 인물이 나타난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공연의 후반부에는 다른 색상의 셔츠를 갈아입곤 하는데 그 의상이 모두 일본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작품이라고 해서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연주복을 입는 것으로 주목을 끌고 있지만 우리 연주자들 가운데 패션 감각에서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지휘자 금난새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검정색이나 짙은 회색 계열의 색상에 겉으로 보기에는 일상적인 수트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부적인 디자인에서 단추와 재봉선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다르면서 꼼꼼하게 마무리 한 특별한 의상이다. 그리고 늘 초록색 계통의 타이에다 같은 색 계통의 소품으로 포인트를 줌으로써 자신만의 시각적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는 점이야말로 실로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만난 연주자들 가운데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가장 뚜렷하고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심어준 음악가라면 단연 피아니스트 장 이브 티보데를 꼽아야 할 것 같다. 눈부시게 밝은 금발과 하얀 피부에 흠잡을 데 없이 빼어난 용모부터가 여성 팬들을 매료시켰고 초인적인 기교에다 폭발적인 힘이 없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리스트의 난곡들을 어루만지듯이, 혹은 노래하듯이 너무나도 부드럽고 편안하게 풀어헤치는 연주는 청중들의 넋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렸다. 특히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섬세하여 부서지기 쉽지만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고아한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몸매를 자연스럽게 감싸면서 어깨로부터 떨어지는 선이 부드러운 듯 빈틈이 없었던 검은색 연미복은 눈부신 그의 외모를 더욱 더 돋보이게 했고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하얀 드레스 셔츠에 빨간 색 나비 넥타이와 역시 빨간 바탕에 금박 실로 화려하게 수를 놓은 조끼는 너무나 파격적이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을 때 살짝 올라간 바지 끝단 아래로 살짝 드러난 빨간 양말은 청중들의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물론 눈에 보이는 복장이나 외모가 들리는 음악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그리고 보이는 것 때문에 들리는 것이 달라질 수야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들리는 것만큼 보이는 것도 좋다면, 그래서 보기에도, 듣기에도 다 좋은 연주회라면 듣기에만 좋은 연주회보다야 당연히 더 즐거울 수밖에 없다. 옷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수단이기 전에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싶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서 그런 마음을 보이고 싶다면 옷차림부터 신경을 쓰고 가다듬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무대에 나서서 청중들을 대하는 예술가의 입장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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