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단 지휘자 해프닝

박인건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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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악단 지휘자는 상임, 전임, 부지휘자, 객원지휘자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상임지휘자는 교향악단이 연주할 프로그램 구성, 협연자 선정, 단원임명 등 많은 권한을 갖는 실질적인 ‘왕초’다. 전임지휘자나 부지휘자는 상임지휘자가 바쁠 때 대신 지휘를 하거나 1년에 한두 번 정도 정기연주회를 지휘한다.

부지휘자는 주로 교향악단의 연습지휘나 리허설 때 음향을 점검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지방교향악단의 경우 부지휘자들은 많지만 이들이 지휘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부지휘자의 기량도 기량이겠지만 상임지휘자들이 별로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객원지휘자들은 교향악단 측에서 특별 초청해 지휘를 맡기는 경우인데 유명한 지휘자이거나 기량이 있는 신예지휘자에게 그 기회가 제공되고 연주단의 훈련을 위해 외국에서 초빙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혹 단원들은 객원지휘자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일부러 음정박자를 틀리게 해 골탕을 먹이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골탕은 먹은 객원지휘자는 단원들에게 연습을 혹독하게 시키는데 이 때문에 마찰이 생기곤 한다.

오래전 K교향악단이 정기연주회 때 지방 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러시아계 외국인 지휘자를 객원으로 초청했다. 그런데 연주회 준비를 하면서 단원들을 호되게 연습시켰다. 이에 당시 교향악단 악장이었던 K씨가 단원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우리를 초등학생으로 아느냐”고 언성을 높이고 그의 지휘를 보이콧했다. 이 바람에 그 객원지휘자는 연주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교향악단으로 돌아가야 했다.

지휘자와 악보에 얽힌 해프닝도 재밌다. 지휘자용 악보를 스코어 또는 풀스코어 즉 ‘총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목관, 금관, 현악, 타악기 등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들의 연주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수록해뒀다.

바로크음악의 악보는 대개 10종류 악기의 연주내용이 그려져 있지만 낭만파 이후의 음악에는 한 페이지에 20여가지 악기의 악보가 들어있다. 지휘자는 이런 스코어를 한눈에 보면서 연주자들의 연주상태를 점검해야 하기에 그야말로 탁월한 능력이 요구된다.

요즘 지휘자들 가운데 악보를 보지 않고 40분이 넘는 교향곡 전체를 지휘할 만큼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암보(악보를 외어서 기억함)로 지휘하는 것이 반드시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번스타인을 비롯해 세계적인 지휘자들은 주로 악보를 보면서 지휘한다. 악보를 안 볼 경우 강박관념 때문에 오히려 나쁜 연주가 나온다는 것이 그 이유다.

몇 년 전 재미지휘자 G씨가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선 다음 그대로 한참을 있다가 갑자기 퇴장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관객들이 궁금해 하고 있을 즈음 그는 한손에 악보를 안고 등장해 객석을 향해 높게 들어보였다. 순간 객석에서는 박수가 다시 터졌다. 연주 후 필자가 사정을 물으니 처음에는 악보 없이 연주를 하려고 했으나, 더 좋은 연주를 위해 마음을 바꿨다고 말했다.

창작곡에서 같은 멜로디가 반복될 때 작곡자는 으레 ‘몇 페이지와 같은’이란 표시를 해놓는데 지휘자 L씨는 연주 도중 그 페이지를 찾다가 음악을 놓쳐버려 지휘봉만 뱅뱅 돌렸던 일화가 있다.

또 필자의 은사였던 J교수는 어느 날 연주회에서 바흐의 이중협주곡 순서를 무사히(?) 마친 후 “어, 이거 비발디 스코어였잖아”라고 말해 모두가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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